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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횡성에서 밀양의 해법을 구하라
한국전력공사의 강원도 횡성 송전철탑 불법공사 파문을 지켜보는 심경이 참담하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부 시스템이 돌아가고나 있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보도에 따르면 한전은 2012년 말부터 강원도 횡성~둔내 구간에 송전선로 건설공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공사를 하면서 환경평가를 무시했고, 송전철탑 일부는 아예 허가도 없이 세웠다가 고발조치와 함께 공사중시 명령이 내려졌다는 게 그 골자다.

안하무인 한전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지 않아도 ‘밀양 사태’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불신의 벽이 더 높아진 상황이다. 더 세심하게 검토하고 정상적인 절차와 협의를 거쳐도 철탑 한 기 세우기가 쉽지 않다. 이런 판에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무작정 밀어붙이는 한전의 빗나간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일단 공사를 강행하고 말썽이 나면 적당히 회유하고 보상하면 그만이라는 극도의 권위적 발상이 아닌가.

더욱이 이 일대는 녹지자연도 8등급, 생태자연도 1등급인 최고의 생태보전지역이다. 실제 주변에는 붉은점모시나비, 물장군, 삵 등 10여종의 멸종위기 곤충과 동물 서식지가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야생 독미나리 자생지이기도 하다. 물론 한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공사 전 실시한 사전환경성 검토에 모두 적시됐고, 환경 피해 최소화 조치를 요구받은 내용이다. 그러나 한전은 들은 척도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다. 당초 이 구간에 49기의 철탑을 세운다고 해놓고선 아무도 모르게 5기를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형식적이던 환경평가도 받지 않았고, 당국의 승인절차도 없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련 당국의 대응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건이 참담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환경부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뒤에야 비로소 검찰 고발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간의 벌금으로 종결될 것이란 결론은 환경부가 더 잘 알고 있다. 사실상 제재 방법이 없다는 소리다. 이런 환경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전을 관할하는 산업부는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본적인 관리 감독 시스템조차 가동되지 않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전례없는 일’이라며 화들짝 놀라는 척하는 건 위선적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허가없이 세운 철탑들을 철거해 주변 환경을 원상복귀시켜야 한다. 비정상인 것은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경제적 손실이 커도 반드시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고 정부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박근혜정부의 새로운 모토가 아닌가.

지금도 밀양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는 수백기의 송전철탑이 건설되고 있다. 그 하나하나에는 엄청난 이해와 갈등이 잠재해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산업부가 감사에 나선다는 한다.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감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원칙’을 거듭 확인한다면 ‘송전탑 갈등’의 근원적인 해법도 찾을 수 있다. 그 결과를 국민들은 예의 주시할 것이다.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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