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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재곤의 스포츠 오딧세이> 스물여섯, 이청용은…
내가 사는 아파트 뒤로 중학교가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밀하게 붙어 있는 아파트촌의 각박한 시야를 벗어나, 그나마 텅 빈 공간을 음미할 수 있어,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 사나흘에 걸쳐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운동장의 눈이 두껍게 쌓였다. 인조잔디도 아닌 흙으로 만든 맨땅이기에 눈 막이 덮여 있는 듯 반듯해졌다.

주말 아침, 웅성거림에 창문을 열어봤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유니폼을 입고, 공을 차는 아이들을 목격하게 된다. 눈밭에서 반바지차림으로 말이다. 얼마나 축구가 좋으면 저리할까?

26살 ‘이청용’(볼턴·사진)도 10년 전, 오늘처럼, 눈밭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의 마음과 같았다. 축구가 그냥 좋았다. 부모의 반대도 마이동풍이었다. 축구선수가 장래목표였다. 추호도 망설임이 없었다. 급기야 그를 눈여겨본 ‘FC서울’은 입단을 제의한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주변의 선망과 우려와 기대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가 세간의 관심사였다.

18세이던 2006년 프로 1군 리그에 속하면서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리한 개인기와 공간을 찾아드는 지각력이 남달랐다. 간혹 제어하지 못한 열기 때문에 불필요한 태클과 시비로 곤혹을 치른 적도 있었다. 프로세계의 냉엄한 현실에 맞닿은 소년의 생존 본능의 분출이었다.

영국의 일간지에 미래의 유망주로 선정된 그를 보고 ‘볼턴’구단은 다각도로 정보를 수집하고 사실을 파악하면서 주판알을 튕겨나갔다. 즉각 투입이 가능한 선수라는 판단 하에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200만 파운드(약44억 원)라는 이적료를 지불케 됐다. 2009년 7월의 일이다. 프리미어리그로의 직행은 이변에 가까웠다. 리그 데뷔도 그의 표현대로 벼락같았다. 영국에 도착한지 48시간이 경과되기 전에 이뤄졌으니.


뒤이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활약은 명문구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게 방해 없이 승승장구 할 것 같은 행운이 어느덧 한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상대선수에게, 선수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시련기에 부정보다 긍정의 힘을 믿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겸허함을 다잡아 나갔다. 지나간 세월의 복기와 현재 자신의 모습과 다가올 미래에 대해 자문자답이 이뤄졌다. 대표 팀에 대한 정제된 직언은 그런 토대위에서 나왔다. 비록 팀은 챔피언십(2부 리그)으로 강등됐지만 병상에서 그렸던 새로운 공간 창조 루트를 복귀 후 실현에 옮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련은 긴 인생에서 득이 됐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주장 리더십과 격이 다른 축구 스타일을 보면서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점을 확인케 된다. 완전한 부활을 알리는 스위스 전의 헤딩골은 인상적이었다. 2008년 대표 팀의 데뷔 골 역시 헤딩골이었다. 얼마 전 중국으로 이적한 데얀(FC서울)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골문 앞에서 침착하고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부상 없이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해서 그간 잠재돼 있던 그의 킬러 본능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aricom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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