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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련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 “세 쌍둥이 엄마로서, 제 점수는 빵(0)점이에요.”
[헤럴드경제=김기훈 기자] 목이 베인 군인과 울부짖는 말(馬), 비탄에 잠긴 여성….

김재련(41)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낯익은 잿빛 그림 한 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였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한 소도시로,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독재자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피카소는 이 비보를 접하고 벽화를 완성해 ‘게르니카’란 이름을 붙였다.

게르니카는 김재련 국장과 12년째 인연을 맺은 그림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스페인의 소피아 박물관에서 구입한 이후 그녀의 집무실에는 늘 게르니카가 걸려 있다.

“게르니카는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듯 정신을 깨우는 느낌을 주죠.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날마다 삶을 점검할 수 있게 해줘요.”

고통받는 타인의 삶에 눈 감지 않고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 게르니카가 던지는 만만찮은 화두는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으로서 그의 삶과도 포개져있었다.


▶변호사에서 여가부 국장으로=김 국장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을 비롯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이사,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아동대책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지냈고 성폭력ㆍ가정폭력ㆍ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여성인권변호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여가부는 지난해 6월 그를 권익증진국장에 임명했다.

변호사에서 공무원으로의 변신, 김 국장은 여가부에서 보내는 제2의 인생을 ‘국비 장학생’이라고 표현했다.

“많이 배우고 있어요. 돈 받으면서 공부하는 느낌이랄까. 현장에서 의견 수렴하고 정책을 만들고 정비하는 과정 그리고 국회나 다른 부처와 조율하는 모든 과정이 학습이죠. 변호사로서만 활동했던 제게 종합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여가부 권익증진국은 여성ㆍ청소년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 성매매방지, 아동청소년 성폭력 방지, 가정폭력 예방 사업 등을 펼치며 ‘4대 사회악’ 가운데 성폭력ㆍ가정폭력 근절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선머슴 같았던 학창시절=이처럼 중책을 맡은 김 국장이지만 그는 첫 울음을 터트리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는 강원도 강릉의 시골 마을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7살 위 오빠가 있었지만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내심 아들을 기대했던 그의 어머니는 딸이 태어나자 실망한 나머지 아이를 이불에 엎어놓았다. 숨도 제대로 못쉬고 버둥거리던 그를 아버지가 바로 놓아 겨우 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고 자라진 않았다. 차라리 ‘선머슴’ 같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숏커트에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 입고, 운동가방 메고 다니고…. 목욕탕 갈 땐 주인 아주머니가 남탕 열쇠를 주곤 했었요(웃음).”

김 국장의 학창시절 꿈은 기자였다. “미모가 다는 아니더라구요(웃음). 예쁘지 않아도 TV에 당당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 보고 기자가 되고 싶었죠.” 하지만 재수 시절 친구의 한 마디가 김 국장의 인생을 바꿨다. “어느날 친구가 ‘여기자는 경찰서 가면 소금을 뿌린다더라, 남녀 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해서 꿈을 바꿨어요.”

그는 결국 이화여대 법학과에 진학했고 사법고시에 매진했다. 2000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2003년 김재련법률사무소를 열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동폭력ㆍ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법률 지원을 소명으로 삼았다. 2011년 사회적 공분을 낳은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의 피해학생을 변호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12년동안 쌓아온 경험은 권익증진국장으로서의 소중한 거름이 됐다.

김 국장은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정책을 집중 추진하는 한편, 예방교육에도 방점을 찍었다. 법ㆍ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한편으로 근본적으로는 인식전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엄마로서는 빵점=‘이 시대, 마지막 식민지’라는 여성 권익을 위해 늘 앞장 서온 그지만 엄마 노릇만큼은 쉽지 않다는 김 국장이다. 세 쌍둥이의 엄마로서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엄마로서의 모습은 ‘빵(0)점’이에요.” 김 국장의 표정엔 난처함과 미안함이 역력했다.

“언젠가 한동안 첫째가 이유 없이 떼를 쓰길래 따끔하게 혼을 냈어요. 그랬더니 대뜸 “엄마는 왜 만날 늦게 들어와?”라고 하더군요. 얘가 “엄마 싫어, 여성가족부 싫어”라고 소리를 쳐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최연소 여가부 안티’세력이 생겼다고 웃으면서 말했어요.”

그랬더니 어느날 조 장관이 김 국장에게 3권의 책을 선물로 보냈다. 제목은 ‘회사 괴물’. 회사에 출근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가 벌이는 소동을 다룬, 그래서 아이 눈에는 회사가 괴물로 보일 수 밖에 없다는 동화였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결국 김 국장도 피해갈 수 없는 무거운 숙제다. 언젠가 ‘국비 장학생’으로 다니는 여가부를 ‘졸업’하면 유학도 가고 싶고, 선진국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제도를 공부하고 싶다는 게 김 국장의 꿈이었다. 또 자신의 경험을 책이나 시나리오로 만들어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게 가장 간절한 소망이었다.

한편 김 국장은 한국 사회의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해법으로 소통과 감수성을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제한된 자원 탓에 늘 경쟁과 속도만을 강조했다. 양적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없었고, 앞만 보고 달렸기에 감수성도 소통도 부족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아울러 “보다 느리게 차분한 걸음으로 삶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가정의 행복과 삶의 질을 생각하는 여성가족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kihun@heraldcorp.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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