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남경태, 방대한 역사에서 현재 시사 흐름을 뽑아낸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기자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보통 사람보다는 역사책을 조금 더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흥미로운 역사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그 저자가 남경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사와 동양사, 서양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폭넓은 지식과 사고력,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관점에서 알기 쉽게 풀어내는 통찰력, 사건과 인물 위주의 역사에 사상적 배경(철학)을 섞어 해석하는 내공이 놀라울 정도다.

남경태는 일요일 아침마다 MBC 라디오 표준FM ‘타박타박 세계사’를 7년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MBC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이 콘텐츠는 꽤 인기 있는 팟캐스트로 통한다. 최근 서울 합정동 오피스텔에 있는 서재에서 그를 만났다.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역사적 안목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역사를 ‘야메’로 배웠다”고 말했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남경태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5년간 글쓰기를 해왔다. 처음에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책을 번역하다 역사와 철학 등 인문서의 저술가가 됐다. 그는 철저하게 읽기 쉬운 글쓰기를 지향한다. 일기를 제외한 모든 글은 보여주기 위한 소통의 글이기 때문에 잘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남경태는 역사의 방대한 숲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현재의 관점에서 읽어내는 참신한 시각을 제공한다. 역사가 딱딱하다고 하는 건 다 거짓말이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아카데미즘에서 나온 학문이 있고, 저널리즘에서 나온 학문도 있다. 이 둘이 어울려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저널리즘에 뿌리를 둔 학자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신채호는 기자 출신으로, 저널리즘에서 출발한 학자다. 그가 쓴 ‘조선상고사’에는 이두 문자 해석이 많은데, 이 책은 이두 해석의 권위서가 됐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퓨전이고, 크로스오버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역사서를 쓰는 것도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도 ‘근본’ 있는 역사학자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근본 없는(?) 역사학자가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맞장구쳤다.

“역사적 사건들을 내 마음대로 연결한 적도 있다. 내가 쓴 부분에 대해 누가 틀렸다고 지적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반성하면 된다. 나는 공부하는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유롭다. 상상력에서 자유롭고, 25년간 ‘갑’으로 살았다. 번역만으로도 남 눈치 안 보고 생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

그는 역사 글쓰기와 대중 강연(대학 강의도 안 한다), 이 두 가지를 하며 살고 있다. 사실 둘은 같은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 강의는 강신주, 역사 강의는 남경태로 각각 대중적 지명도를 얻은 상태다. 남경태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은 강연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오늘의 시사를 올바로 인식하려면 역사적 근원을 살펴야

남경태는 모든 시사의 배후에는 역사가 있다고 한다. 지금의 대학입시와 고시는 과거제의 흔적이요, 유산이라는 것.

“중국에서 오랜 분열기 끝에 제국을 부활시킨 수나라 황제가 과거제를 채택하는데, 귀족과 호족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관료들을 직접 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려 광종도 건국 초기의 불안정한 중앙권력을 과거제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과거제는 합리적이고 능력 있는 관리 임용제도로 기능하지 못하고 기존의 사회 체제와 지배구조를 온존시키기 위한 제도가 됐다. 과거 시험 과목도 명경과 제술이었다. 명경은 유학 경전을 얼마나 읽었느냐는 것이고, 제술은 경전 문구를 인용해 글을 짓는 것이었다. 명경은 경전을 교과서로 바꾸면 곧 수능고사가 되고, 제술은 대학입시 논술고사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의 수능에 해당하는 SAT가 학문을 위한 적성 테스트이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가 교양시험의 성격이 강한 것과 비교된다.”


그는 동양식 원정과 서양식 해외 진출의 차이를 설명하며 한류를 성찰한다.

“명나라 때인 15세기 초 엄청난 규모로 출발한 정화의 남해원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대륙 원정보다 한 세대 전에 이뤄졌지만 서양의 원정이 더 크게 성공했다. 전자는 나를 남에게 알리는 데에 관심이 컸고, 후자는 남을 알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기 때문이다. 정화의 남해원정은 신생국 명나라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함이었고, 지중해 무역로를 북이탈리아 상인에게 빼앗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동방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었다. 바깥세계를 알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의 한류 현상은 지리상의 발견과 같은 서양 역사의 진취적이었던 시대가 아니라 실패한 동양 원정을 답습하는지도 모른다. 남을 알려는 노력 없이 우리의 콘텐츠만 알리려는 한류의 결과는 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경태는 공화정을 발전시켜온 서양에서 납세는 의무이자, 권리인데 우리는 납세를 오로지 의무로만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왕조 시대 왕토 사상에 기반을 둔 왜곡된 세금 관념 때문이다. “동양의 농민이 경작하는 토지는 원칙적으로 왕의 소유였으므로 세금은 절대적인 의무였을 뿐, 대가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세금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이고, 절세를 위해 머리를 굴린다. 재벌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하는 게 당연해져 버렸다.

▶남경태 역사 강의의 두 가지 축

남경태 역사 강의 축은 크게 두 가지다. 동양사와 서양사의 차이가 어떤 문명적인 차이를 낳았는지와 과거의 것이 현재의 시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둘 다 ‘매크로(macro)’한 역사로 평생 과제다. 나는 역사로는 학위를 따지 못했을 것이다. 동서양 문명 비교를 어떻게 학위 논문으로 제출할 수 있겠는가. 대학에 갈 생각 없다.”

본인이 ‘야메’로 배웠다는 역사를 어떻게 공부했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종합 일간지의 한 중견 기자가 나에게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다독을 하지 않는다.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는 스타일이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와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가장 좋아한다. 공부할 때는 희귀한 자료를 찾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을 입힐 줄 아는 스킬이 있어야 한다. 소재와 자료, 소스는 다 공개돼 있다. 어떻게 편집하고 배열하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자료의 신선함보다는 내가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를 더 많이 고민한다.”

그러면서 그는 책과 텍스트는 어릴 때부터 친숙해지지 않으면 나중에 읽지 못한다는 말을 들려줬다. “영화나 드라마 등 시각 매체는 상상할 수 없다. 글은 상상할 수 있다. 읽는 사람이 텍스트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무협지’에는 절대미녀가 나오는데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실망한다. 쥐라기공원도 소설이 훨씬 재밌다. 나는 텍스트만을 가지고 여백을 채우는 공부가 좋다.”

그가 대중적인 글을 쓰는 이유는 “이걸 읽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어떤 생각을 할까?”를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15년 전 ‘종횡무진 서양사’를 쓸 때다. 그리스, 로마사는 알고 있었고 근대도 공부했지만 서양의 5~10세기는 몰랐다. 그런데 중세에 관한 책을 쓰게 되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책을 써야 하는 절박함이 책을 농밀하게 읽게 했다. 주식 투자를 처음 할 때 관련 책을 2~3권 사서 보고 하는데, 나는 주식 투자에 관한 책을 써보라고 한다. 나는 역사를 교통정리하는 책은 싫다. 저자의 호흡이 살아 있는 책, 남경태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면 공해라고 생각한다.”


▶국사가 아닌 지역사가 돼야

남경태는 국내에서 인문학이 각광받게 된 큰 계기를 제공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라고 했다. 첨단 사업에 종사하는 잡스가 “이 모든 것을 인문학에서 배웠다”고 말하면서라고 한다. 사회과학서가 퇴조하면서 인간과 삶의 좀 더 근본적인 부분을 알고자 하는 욕구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올려놨다.

“제 강의를 듣던 한 무역업계 CEO가 이런 말을 했다. 80~90년대는 바이어가 계약서에 사인한 다음에는 술접대만 하면 끝이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 문화나 사회, 정서를 알고 싶어하고 서울 인사동도 둘러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기업 대표에게도 인문학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기업 CEO 강좌에 인문학이 많이 마련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다.”

요즘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는 것과 관련해서도 남경태는 한마디했다. 국사라는 과목이 아닌 지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

“한ㆍ중ㆍ일 삼국이 헛된 생각을 한다. 중국은 ‘동북공정’,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내놓는다.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에 사대하는 국가였다고 하면 우리는 광개토태왕의 중원 정복을 내세운다. 광개토태왕은 요동을 안정시키려고 한 것이지, 중원 정복 의지는 없었다. 또 임나일본부설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우리가 일본 전체를 지배했다고 한다. 역사에서는 민족주의와 국사를 버려야 한다. 대신 지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국사로 묶어놓으니 우리 왕조 교체와 유사한 중국 역사뿐 아니라 일본 역사도 모른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와 판소리 등 민족문화가 왜 나오는지는 중국 역사와 연관돼 있다. 명ㆍ청 교체기인 17세기 중국이 오랑캐 국가가 되자 우리의 것을 배우자는 것이었다. 소현 세자도 그런 선각자 중 한 사람이다. 서인과 남인이 상복을 몇 년 입자고 서로 싸운 것도 중국이 개입돼 있다. 그러니 동북아시아 역사라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는 영국 역사서는 로마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로마의 침략으로 켈트족이 스코틀랜드로 쫓겨가고, 로마에 항전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영국이 유럽에 알려졌다.

“우리 국사 교과서는 문자 기록도 없는 단군 이야기부터 나온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 후 1000년 역사는 비어 있다. 민족사와 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술이다. 기록이 나오는 한사군에서 시작해야 한다. 역사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공부하면 안 된다.”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텔러 남경태의 역사 이야기는 끝이 없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