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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 나이듦과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느끼는 행복…아흔 즈음에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한국학의 거장’ 고(故)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의 유작 ‘아흔 즈음에(휴머니스트)’가 출간됐다.

지난해 지병인 혈액암으로 별세한 고인은 1962년부터 1991년까지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인제대 교수와 계명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고인은 평생 동안 한국인의 뿌리와 한국 문화의 원형을 밝히는데 천착해 국문학과 민속학을 아우르는 한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문을 연 열정적인 학자였으며, 세상에 70여 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대표 저서로는 한국민속과 문학연구(1971), 한국문학사(1983), 삼국유사와 한국문학(1983) 등이 있다.

‘아흔 즈음에’는 고인이 여든의 나이를 넘기고 아흔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서 바라본 나이듦과 죽음 등 인생의 궁극적인 주제들을 철학과 체화된 경험으로 풀어낸 에세이를 담고 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니 전날까지도 이 책의 원고를 다듬어나갔다. 그만큼 이 책엔 그간 고인의 저서와는 달리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인은 세월 앞에서 무너지는 신체의 한계와 병고 앞에서 느낀 서글픔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외딴 시골에 살며 경험한 깊은 외로움의 순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자신의 노년을 포장하지 않는다. 


“삶이 마치 무슨 쭉정이 같다. 흩어지다 만 몇 가닥의 꽃잎 같아 보인다. 여생이란 그 말, 나머지 인생이란 그 말이 역겨워서 떨어내자고 해도 그게 쉽지 않다. 지겹도록 머릿속에 눌어붙어 있다.”(25쪽)

이 같은 고인의 진솔한 모습은 역설적으로 자기다운 노년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조언으로 다가온다. 고인은 평범하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진리와 위안으로 독자에게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몸소 보여준다.

“나는 죽음을 노년의 당연한 삶의 표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죽음을 삶의 한 고비로 받아들이도록 마음 쓰고 있다. 낯익은 사람을 생각하듯 죽음의 상념에 잠겨보기도 한다.”(63쪽)

고인을 통해 걸러져 독자에게 닿는 나이듦에 대한 고찰과 죽음에 대한 철학은 모든 생 앞에 놓인 시간의 평등함과 인간 본연의 고독을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만들어줌으로써 깊은 울림과 여운을 준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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