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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분열된 주체…> 공감은 진보, 투표는 보수에 왜?...김혜영의 정신분석평론집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 김혜영, 푸른사상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현대사회는 보이는 폭력보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한다. 집, 학교, 직장, 내 자리 어디서든, 언제든 내쫓길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문득문득 엄습한다.

일상에서 미묘한 공포를 경험하는 현대적 주체들을 통찰한 정신분석학적 문예비평집이 출간됐다. 그 어디에서도 온전한 안정감을 느낄 수 없고 유목민처럼 배회하게 만드는 이 시대, 회색 유령처럼 떠도는 주체의 심리를 현대시 분석으로 파헤친 책이다.

계간지 ‘시와 사상’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부산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혜영(영문학 박사) 시인이 첫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이후 8년 만에 펴낸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에는 무수한 분열된 주체들이 출현한다. “아무도 나를 때리는 사람이 없는데 아프다”는 저자의 말처럼 무엇이 현대인을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지,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그녀가 시집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2011년)에서 보여주었던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이 비평적 관점으로 확장되어 있다.

저자가 정신분석학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로버트 로월 등 미국의 ‘고백파’ 시인들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정신병을 앓았고 자살한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시에 등장하는 광기, 우울, 불안이 저자 자신과 현대 시인 상당수에게도 다소간 깃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무의식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초상, 낯선 이미지가 가슴에 밀려드는 순간이 있음을 토로하며, 시인들이 쏟아내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의 이면에서 얼룩진 욕망과 공격성이 잠재돼 있음을 눈치챈다. 현대사회 주체들의 심리가 투영된 것이다.

책은 모순된 감성들이 현대시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다룬다. 진보의 정치적 이상을 희망하지만 보수의 안정성에 투표하는 정치적 심리는 왜 분열되어 있는가, 경쟁의 일터에서 하루를 마치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멈칫하도록 붙드는 애인 또는 소녀의 환상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몸부림친다.


김혜영의 분석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것이어서 차분하지만 신랄하다. 꿈 혹은 농담을 통해서 무의식에 억압된 욕동(欲動)을 뱉어내는 이 시대 주체들을 현대시를 통해서 과감히 탐색해보는 시선이 흥미롭다.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그를 거부하는 몸짓들, 동성애를 혐오하면서도 동성애를 다룬 영화에서 묘한 감동을 느끼는 이중적 심리들을 섬세한 필치로 분석했다.

최근 여성 시인들의 한국 문단 점령 이유와 그들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왜 요즘 시 읽는 독자보다 시 쓰는 독자가 더 많은지를 감지할 수 있다.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시 쓰기가 절실하지 않았을까. 이성적이라지만 비합리적으로 떠도는 분열된 주체들의 심리는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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