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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윤재섭> 또 해 넘긴 예산안…국회의 벼락치기 정치력
학창 시절 벼락치기 공부를 해본 일이 있다. 그날그날, 그때그때 챙겼어야 할 공부를 미뤘던 게으름 때문이었다. 시험기간이 닥쳐서야 밤새워 공부했다. 한꺼번에 지식을 쏟아부으려 했으니 머리에 쥐가 났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고 정리되지 않았다. 결과는 뻔했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국회가 또 벼락치기로 2014년 예산안을 처리했다. 해를 넘겨선 안 될 예산안을 새해 첫날인 1일 새벽 본회의를 열고서야 늑장 처리했다. 지난해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헌정사상 없었던 일이 2년 새 두 번이나 반복됐다. 19대 국회가 남긴 헌정사의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입법부다. 그래서 국회는 법에 대한 경외감이 살아숨쉬어야 한다. 그런데도 국회는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법정시한을 매번 어기고 있다. 스스로 법을 깨고 있다. 심각하다. 국회가 법을 가벼이 여기고 깨기를 주저 않는다면 국회의 권위 역시 인정받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마지막 순간 발휘됐던 여야의 정치력으로 말미암아 한국판 ‘셧다운’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며 정치권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웃기는 얘기다. 너무도 온정적인 평가다. 애초 정치인에게 더는 바랄 게 없던 냉소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5000만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집단에 대한 기대치에는 한참 모자란다. 더구나 예산안 연내 합의 처리는 불과 며칠 전까지 여야가 다짐했던 금석맹약(金石盟約)이 아니었던가.

국회는 나라 살림살이인 예산안을 각종 민감한 법안 처리와 연계하고 정략적인 거래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면할 수 없다. 국정원개혁 입법을 처리하는 대가로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던 여야는 이것도 모자라 막판에는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처리하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한 의원은 외촉법안 처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울음까지 터뜨렸다고 한다.

정치가 곧 타협인 까닭에,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는 법안을 놓고 ‘절충’하는 행위를 단죄할 순 없다. 하지만 나라 살림살이를 갖고 거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망국적 행위다. 예산안을 볼모로 잡은 탓에 31일부터 1일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2개의 결의안을 포함해 113개의 법안은 무더기로 처리됐다. 의원들이 토론은커녕 법안을 제대로 읽어볼 시간이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쪽지예산이다, 문자예산이다 논란까지 벌어졌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국회법이 적용돼 국회의 ‘습관성 위법’ 행위가 근절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개정 국회법에 따라 예산안과 세입예산 부수법안에 대한 심사가 법정기한의 48시간 전까지 완료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자동으로 회부되는 국회법 조항(제85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산안 자동상정제가 도입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도 섣부른 기대라는 지적이다. 대치정국으로 국회가 공전한다면 예산안 처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예산안 처리시한을 어기는 등의 위법을 자행한 국회가 국회선진화법이라고 못 어길 일이 있겠느냐는 냉소다. 구태가 재연된다면 국민은 결코 정치권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국회는 법에 대한 경외감이 충만하기를 기대해본다. 

윤재섭 정치부장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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