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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승자없는 철도파업, 민영화프레임 갇혀 ‘코레일 수술’ 본질 묻어
[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파업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월급도 130만원 적게 나왔고, 이것저것 다 떼고나니 손에 쥔 건 5만원가량이더군요…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28일 현업으로 돌아온 한 철도노조원의 고백입니다. 그의 ‘불안감’은 22일만에 끝을 본 철도노조파업이 왜 시작됐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직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들을 파업으로 내몬 결정적 동인이자, 현업복귀를 선택케 한 이유였습니다.

결론부터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이번 파업의 승자는 없었습니다. 애초 대결 구도부터 본질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파업이 초래한 대결구도의 본질은 정부와 코레일 경영진의 ‘공사 개혁’에 맞서 그 방법을 문제삼은 철도노조의 반발이었습니다.

철도 민영화는 노조가 내세운 파업의 명분일 뿐, ‘공사 개혁 과정에서 내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노조원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이번 파업의 강력한 동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단 뜻입니다.

왜 그런지 볼까요. 


▶철도파업, 단지 ‘민영화 저지파업’ 이었을까 = 11월 22∼23일.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간부들과 경영합리화 워크숍을 열고 “현안해결을 위해 당장 내년, 내후년 성과를 낼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최 사장은 인력과 조직개편을 통해 직원 수가 26%로 줄어든 전매청의 예를 듭니다. 또 그는 10월 취임 후 조직슬림화 드라이브를 거는 중입니다. 간부 임금동결을 통해 인건비 16억원도 아꼈습니다. 이는 천문학적인 부채규모에 비하면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코레일이 개혁의 방안으로 인력 및 임금조정을 진행 중인 건 사실입니다.

반면 철도노조는 경영진 워크숍이 있던 날(23일) 소식지를 내고 “철도노조는 임금 및 현안교섭을 연내 마무리하기 위해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이 필요한 입장”이라고 밝힙니다. 이미 11월 6일 노사간 임금교섭이 결렬된 시점이었습니다. 철도민영화 저지 뿐 아니라 처우 문제도 파업의 주요한 이유였음이 보입니다.

이는 12일 열렸던 노조임시대의원회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대의원들은 투쟁결의문을 통해 “당면한 임금ㆍ현안 관련 찬반투표로 철도분할 민영화 저지와 해고자 복직을 향한 투쟁의 성공가능성을 알 수 있다”며 “90% 이상 표결로 철도노동자의 힘을 보여주자”고 밝힙니다.

물론 이 투표에서 철도 민영화를 안건으로 할 순 없습니다. 쟁의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파업이 단순히 ‘철도민영화’만 막고자 촉발된 게 아니란 점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철도노조는 수서발KTX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분리’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김명환 철도노조위원장은 10월 8일 최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수서발KTX는 철도 발전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19일 한 노조회의에선 “열차 안전과 효율성을 고려할 때 수서발KTX는 코레일 직영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수서발KTX가 분리될 경우 코레일의 추가 부실이 우려된다는 주장도 틈날때 마다 피력합니다.

왜일까요. 흑자노선을 코레일 직영으로 가져가는 게 궁극적으론 부채감축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나아가 노조가 쪼개지지 않으니 코레일 개혁 과정에서 등장할 인력조정의 여파를 줄일 수 잇습니다. 따라서 노조도 피해를 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 노선의 주식회사 출범이 기정 사실화 하면서 노조는 수서발 KTX분리를 민영화 전 단계로 단정합니다.

▶ 민영화 프레임의 헛점 = 결국 노조의 철도민영화 프레임이 본격 가동됩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선 ‘민영화가 되면 운임이 올라간다’는 주장을 봅시다. 이건 일반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철도와 경쟁체제를 도입한 유럽 등 해외철도 운임을 단순히 절대금액만으로 비교한 자료가 인터넷에 돌기 시작합니다. 운임은 해당국가의 국민소득이나 물가수준을 고려해 책정됩니다. 복합적이고 세밀한 비교가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 기차표값입니다.

심지어 영국에 산다는 한 누리꾼이 100km구간을 네 번 왕복하는데 40만원이 들었다는 글을 올리자 SNS엔 ‘서울서 KTX타고 콘서트보러 부산 가려면 40만원 든다’는 괴담까지 퍼졌습니다. 


그럼 ‘수서발KTX의 지분매각 가능성’은 어떨까요? 철도노조는 26일 서울 용산역에 ‘국토부가 숨기고 싶은 철도민영화 근거’라는 유인물을 배포합니다. 여기서 노조는 수서발KTX의 코레일 지분이 41%로 높아졌다며 “코레일의 지배력이 높아졌다는 점은 ‘정부압력→코레일에 의한 정관변경→민영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라고 언급합니다.

그런데 ‘정부 압력’부터 틀렸습니다. 국토부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11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서발 KTX의 코레일 지분은 50%를 넘지 않는 선에서 통제할 생각”이라며 “정부는 코레일에게 수서발KTX지배력을 높여줄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정부에게 코레일은 수술이 필요한 개혁대상이기 때문에 자회사를 흡수하는 방만한 경영 행태를 용인할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 결국 정부 책임…왜?= 하지만, 이처럼 헛점이 보이는 프레임이 생성된 빌미를 제공한 건 정부 탓이 더 큽니다.

정부는 ‘수서발KTX가 민영화의 전단계’라는 노조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신 민영화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기자가 쓴 정부의 ‘민영화 아니니 파업 복귀하라’는 호소문 기사만 2개가 넘습니다.(헤럴드경제 온라인판 12월6일, 12월 22일자 등) 한마디로 노조가 제기한 ‘수서발KTX주식회사 = 민영화’ 프레임을 조금도 못 벗었습니다.

가장 최근인 27일 국토부는 수서발KTX면허발급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료엔 ‘공공’, ‘공적지분’등 민영화가 아님을 보여주는 단어만 가득했습니다. ‘이 회사의 출범으로 코레일의 적자는 얼마나 해소되고, 코레일 개혁을 위한 시민 여러분의 혈세는 앞으로 몇%가 덜 들어갈 것이다’라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노조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노조에 찬동하는 시민들도 정부의 말을 안 믿었습니다.

믿게 하려면 어찌해야 했을까요. 앞으로도 수서발KTX를 둘러싼 시민불신을 잠재우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민영화 프레임을 ‘공공부문 개혁 프레임’으로 바꿔야 합니다. 시민들은 ‘신의 직장’ 대접을 받지만 경영상태는 형편없는 공기업을 고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부는 12월 9일 이후 지금껏 ‘수서발KTX주식회사 출범이 공기업 개혁의 시금석이다’는 입장을 펼치며 관련 숫자나 근거를 촘촘이 갖다붙이는 노력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수서발KTX주식회사가 출범하면 코레일 경영개선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데이터가 나온 적 있었나요. 국민세금이 대략 얼마나 덜 들어가는지 말해준 적 있었나요?

아직 데이터가 없다면 정부는 공기업 수술의 신호탄이자 철도분리라는 ‘중차대한’ 정책을 시행할 준비가 덜 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코레일개혁 작업 전에 이 공사의 막대한 부채엔 정부의 책임도 있었단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11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정책 수행에 부채가 생긴 것도 있다”며 총 6조1000억원의 부채가 발생한 사실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최 사장은 또 “2005~2011년 사이 철도시설공단에 선로사용료 4조3000억원을 냈는데, 동 기간 누적적자는 4조1000억원이다. 적자보다 많은 돈을 선로사용료로 냈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정부는 공기업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민영화 프레임’의 엉뚱한 역풍을 맞았습니다. 노조의 반발이 이같은 방식인 건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정부는 정책 잘못으로 생긴 코레일의 부채가 있었다면 과거정권의 잘못이라도 발뺌 말고 인정해야 합니다. 개혁의 준비가 덜 됐다면 차근차근 해서 여론의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노조에겐 납득할 만한 논리를 제시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불안감을 없애야 합니다.

이제 협상장은 만들어졌습니다. 정부(코레일)와 철도노조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봅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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