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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박도제> “친구야, 미안하다. 내가 철이 없었다.”
나이든 탓일까. ‘컥’하고 숨이 막히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라는 책을 몇 장 넘기지도 못해 굳어 있던 기자의 얼굴은 완벽하게 무장해제당하고 말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앞세운 엄마의 심정은 그렇게 눈물로 다가왔다.

책은 2년 전 대구 모 중학교 2학년생이던 권승민 군이 학교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그날의 기억을 담고 있다. 자살을 앞둔 아이의 무덤덤한 모습, 불안한 출근길, 경찰의 다급한 연락, 바닥이 떨어진 아이가 추울까 걱정하는 엄마, 죽을 때까지 가족을 걱정했던 아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아이의 이상한 행동들, 서서히 드러나는 학교폭력, 커지는 분노…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로 쓰여 있었다.

20일은 권승민 군이 삶을 마감한 지 꼭 2주년이 되는 날이다. 다시는 그러한 불행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경고음을 울린 날이기도 하다.

2년간 얼마나 달라졌을까. 학교전담경찰관(SPO)이 생기고 학교폭력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사회적인 인식을 키웠다는 점에서 일단의 변화는 느껴진다. 실제 교육부 통계에서도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물리적인 폭력은 줄었을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사이버 학교폭력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범죄가 진화하듯 학교폭력도 사이버 비방ㆍ감금ㆍ배제ㆍ불링(bullying) 등으로 더욱 은밀하고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 둘을 둔 아빠로서 걱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도 멀지 않은 미래에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이는 본지가 최근 시작한 기획 시리즈 ‘왕따보다 무서운 사이버 학교폭력’을 준비하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질문이기도 하다.

막막해 보이는 질문 속에서 기자가 찾은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부모 자신이 어릴 적 철없이 학교폭력을 가했던 부분에 대해 당사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그 모습 속에서 자식들은 학교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에게도 큰 후회와 상처로 남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폭력 정도는 아니지만, 기자도 몇 번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동급생에게 억지를 부린 일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짝의 의자를 빼 넘어뜨린 적이 있다. 장난으로 시작된 것이 진실 게임으로 변하면서 친구에게 거짓을 윽박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친했던 친구를 한 명 잃었다. 나이 마흔이 지난 지금 그 친구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학록아, 미안하다. 내가 철이 없었다.”

고해성사와 같은 고백이 학교폭력을 획기적으로 줄이지는 못하겠지만, 승민 군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물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학생이 찌찔이로 취급받는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박도제 사회부 사건팀장 pdj2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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