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야기가 있는 길]<12> 단양 소백자락길...“걸어서 올라 날아서 내려올까“
힐링도 경쟁하는 시대다. 웰빙 경쟁의 후속편 같다. 주말이면 힐링을 위해 산으로 들로 바다로 떠나야 할 것 같고, 주말 힐링 경쟁에서 도태한 도시인은 영원히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 채 이대로 병들어갈 것만 같다. 웰빙은 언감생심이고 힐링은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이 곳은 힐링에 웰빙을 더해 ‘힐빙도시’라 불린다.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으나, 둘 중 하나라도 누릴 수 없는 자에겐 이중의 스트레스다. 단양이 바로 그 자타공인 ‘힐빙도시’다.

8경으로도 이미 유명한 단양은 ‘힐빙도시’라는 새 타이틀까지 얹어 초행자를 주눅들게 했다.단양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가. 남부럽지 않은 비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 힐링에 웰빙까지 할 수 있다니. 이곳에선 반드시 그 두 가지 전리품을 얻어가야만 할 것 같다. 과연 도시의 ‘새벽공장’ 노동자는 경쟁하듯 짧은 주말여행으로 힐링할 수 있을까. 복잡한 도시에서 웰빙은 어떤 방식으로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맥락없는 물음표들을 품은 채, 그림 같은 소백산 설경속으로 낯선 발걸음을 향했다. 



▶ 모텔 불빛마저 풍광에 녹아드는 단양…소백산 자락길에 제대로 ‘빠지다’= 충북 최북단에 위치한 단양은 북으로는 영월, 남쪽으로는 문경, 서쪽으로는 제천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의 명산 소백산은 말할 것도 없고 금수산, 도락산 등 명산이 둘러쳐져 있는 가운데 남한강 맑은 물줄기가 도담삼봉, 구담봉, 옥순봉 등 8대 비경을 휘감고 있다.

소백산 자락을 감아 도는 전체 길이 143km의 ‘소백산 자락(自樂)길’은 총 12개 코스의 걷기 길로 구성돼있다. 각 코스는 평균 거리가 12km 내외여서 약 3~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자락(自樂)이라는 작명에 가장 먼저 마음이 끌렸다. ‘스스로 즐긴다’는 단순한 명제에서 머릿속 물음표들의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름난 비경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소백산 제6자락길에 올랐다. 길이 13.8km의 이른바 ‘온달평강로맨스길’은 온달산성, 온달관광지, 화전민촌 등이 포함돼 있어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한다. 둘레 682m의 온달산성은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온달장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라는 의견에는 논란이 분분하다.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아단성이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주장과 서울의 아차산성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온달산성 주변 마을의 다수가 군사 용어나 온달장군과 관련된 이름을 갖고 있다는 해설사의 설명만으로는 온달산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여부를 확증할 수 없으나 이야기가 깃든 길은 여전히 흥미로웠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었다. 올해 처음 느껴보는 영하 4~5도의 강추위에 지레 겁먹은데다, 온달산성에 올라 장쾌한 풍광을 한눈에 담아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탓에, 좁고 구불구불한 지름길을 차로 오르기로 했다. 30분쯤 기어가듯 달리다가 차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스노타이어도 체인도 경사진 길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차를 버리고 걷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20여분쯤 더 걸었을까. 산성이 눈앞에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이번에는 사람다리가 헛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두 발로 못 오르니 네 발로 올랐다. 한 보 오르면 반 보 미끄러지는 걸음은 어느새 즐거운 놀이가 됐다. 눈밭에 발이 빠질 때마다 나는 뽀드득뽀드득 소리마저 ‘자락자락’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 물줄기가 태화산의 지맥과 어우러지는 설경은 장엄했다. 구름이 손에 닿을 듯한 그곳을 향해 한번쯤 뛰어 내려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만이었을까. 걷기만 하는 것이 허전했다. 자락길을 내려올 때쯤 겨울산은 이미 석양으로 물들어 있었다. 남한강로를 따라 저 멀리 보이는 단양읍이 어머니 품처럼 포근했다. 달보다 일찍 잠드는 고요한 이 마을에서는 형형색색 모텔 불빛마저도 아늑해 보였다.

▶ 도담삼봉에 해가 뜰 때 삼봉 정도전도 함께 깨어난다=이튿날 아침해가 뜨기 전 도담삼봉(명승 제44호)으로 향했다. 8경중 으뜸가는 비경이라는데 흥이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명승 고적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도담삼봉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도담삼봉을 너무 사랑해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했다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과 관련된 것이었다. 강원도 정선에 있던 삼봉산이 홍수로 인해 남한강을 따라 단양까지 떠내려 오자, 정선에서는 ‘도담삼봉을 가져갔으니 세금을 내라’고 했단다. 이에 정도전이 기지를 발휘해 ‘도담삼봉 때문에 물길이 가로막혔고, 이로 인해 피해가 있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있는 모양을 두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운데 봉우리는 남편봉, 돌아앉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봉우리는 처봉, 뾰족한 봉우리는 첩봉이라 불리는데, 처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남편이 첩을 들였고, 산모처럼 배불뚝이 모양을 한 첩을 바라보는 남편과, 그런 남편이 미워서 돌아앉아버렸다는 아내의 이야기가 흡사 세 개의 봉우리 모양과 꼭 닮았다는 것이다. 도담삼봉에 얽힌 이야기들 속에 이곳을 아꼈던 많은 이들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옛날 이야기 몇자락에 지루함이 금새 날아갔다.

석문으로 향했다. 도담삼봉에서 전망대 방향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다리 근육의 팽팽한 긴장이 통증으로 느껴질 무렵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석문 위로 올라가는 길은 ‘진입 금지’ 표지판으로 막혀져 있었다. 금단의 열매라도 있는 듯 호기심이 발동했다. 결국 경계를 넘었다. 나무와 풀이 휘감고 있는 아치형 석문 위에서 보이는 남한강이 거울처럼 반짝였다. 강 건너 마을에선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 올랐다. 살아본 적 없는 시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 막연한 향수가 정처없이 함께 피어 올랐다. 그러나 기억할 것. 이곳은 ‘진입 금지’ 구역이다.


▶ 걸어서 올라 날아서 내려오다…두산활공장 패러글라이딩=아무래도 걷다 끝나는 것이 영 허전했다. 인근에 활공장이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였다. 놀이기구도 즐기지 못하는 터에 패러글라이딩이라…. 이상하게 겁이 나질 않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글라이더를 띄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운영자와의 전화통화에 오히려 조바심이 났다. “패러글라이딩, 반드시 하고 말리라!”

두산활공장은 단양군 가곡면 사평2리 해발 550m 두산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두산활공장은 두산 9부 능선의 주 이륙장과 두산 정상의 보조 이륙장 2곳이 있다. 산길을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다행히 바람이 제법 가라앉아서 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주복 같은 수트를 입고 헬맷을 썼다. 이륙장에 서서 2인용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장착하는 강사를 기다리며 온몸으로 바람을 맞았다.

“하나 둘 셋 하면 무조건 달리세요.”

“벼랑 아래로 달리라는 건가요? 아니면 벼랑 끝에서 점프하라는 건가요?”

“절대 점프하면 안됩니다. 무조건 달리세요.”

하나, 둘, 셋…. 


부웅 날았다. 몇발자국 떼지 않았는데 몸이 떠올랐다. 글라이더는 강력한 상승기류를 타고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신선봉, 형제봉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소백산 능선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올랐다. 칼 같은 겨울바람이 맨살을 도려낼 것 같은 고통도 하늘을 나는 쾌락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20여분 동안 구름이 된 듯 하늘을 유영했다. 생애 첫 비행. 모든 것은 발 아래 있었다.

“안전하게 내려 드릴게요. 다리를 쭉 펴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쿵. 착륙은 더 순조로웠다. 걸어서 올라온 길을 날아서 내려갔다.

탠덤파일럿(2인용 패러글라이딩 비행사) 이동원씨에게 물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가장 위험했을 때는 언제였냐고. “작년 양평 유명산에서의 일이었죠. 이륙하자마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는 거예요. 글라이더가 먹구름에 빨려 들어가면서 고도 3000m까지 올라갔어요. 하강은 불가능했고 비구름과 번개를 피해 반대편으로 계속 도망가다 결국 양평에서 원주까지 날아갔지요.”

에베레스트가 해발 8800m정도이니 세계 최고봉의 3분의 1 정도 되는 높이를 1시간 넘게 날았던 셈이다. 글라이더는 비바람에 너무 젖어 휴지조각처럼 돼 버렸고 결국 보조낙하산을 펴고 내려왔다고 한다. 17년 경력의 베테랑 파일럿이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한 순간이었다. 이 위험천만해 보이는 스포츠를 여름이 되면 두산활공장에서만 하루 5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와 즐긴다고 한다.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죽어도 좋아’.

‘자락길’은 소백산 뿐 아니라 단양 곳곳에 있었다. 걷기의 즐거움은 걸을수록 새롭게 돋아난다. ‘자락(自樂)’의 길에서는 걷다가 미끄러지면 다시 걷고, 걷다가 힘들면 날아버려도 좋다. 힐링도 웰빙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도시인의 월요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겠지만 분명한 한가지, 스스로 즐겨라. ‘힐빙’이 함께 한다.

단양=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