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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조경란> 나이를 잘 먹는 방법
올 한해동안 도대체 뭘했나
나이 들어가는 게 우울하다면
새로 시작하고 배울 거리 찾길
직업과 무관한, 좋아하는 일을…


‘나이를 먹다’라는 관용어가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이만한 표현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달이 지나면 또 한 살 먹게 된다.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저런 모임이나 송년회 몇 번 갖다 보면 갑자기 해가 바뀌고 1월이 돼버리는 얼떨떨한 느낌을 그간 수도 없이 받아 왔다.

그러기 전에, 12월이 다 가버리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게 된 것은 마흔을 넘고부터다. 새해 계획을 세우기 전에 아무래도 올해를 돌아보는 게 순서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시도해 본 일마다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고 말해야 한다. 이력서 비슷한 것을 쓰고 지원한 어떤 프로그램들에서 각각 시차를 두고 두 번 떨어졌다. 상금도 큰 두 군데 문학상들의 본심에 올라 있던 단편소설이 가을과 겨울, 차례차례 떨어졌다. 떨어졌다는 말을 하다 보니 심지어 지난달, 한밤중에 집 계단에서 미끄러진 일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2년 전에 깁스했던 오른쪽 발목이라 다시 반 깁스해서 지금도 그 상태다. 여름 다 지날 때는 어머니가 다리를 깁스하고 있어야 해 한 달 넘게 대가족의 살림을 도맡느라 글 한 줄 쓰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이 정도면 지난 여느 해보다 나을 것도 즐거울 것도 없었던 한 해가 아닌가. 그런데 또 아주 그렇기만 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2, 3년 전쯤인가, 나는 내가 더 이상 ‘젊은 작가’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물리적인 나이나 젊음이 사라져가는 외모와 체력도 그렇지만 나이 들어가는 데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기도 했다. 그저 나이 먹는 것에 불평만 하고 있었을 뿐. 그 후로 제대로 나이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나름대로 나한테 잘 맞고 실천 가능한 몇 가지 사항들을 만들어두었다. 그중 한 가지가 그동안 배우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러지 못한 일들을 실천해 나가는 거였다.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자신 없어질 때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게 우울한 이유는 성취하는 것도 없고 지난해 비해 자신이 나아진 게 없다고 느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일이다.

올 봄엔 독일 몇 개 도시에서 낭독회가 있어 다녀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올해 나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을. 십여 년 동안 두 번이나 포기해 왔던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고 쓸모 있는 외국어를 공부하지 그러냐고 충고하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바로 그 언어였다. 더 공부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게 남는 미학이나 철학에 관한 책들, 문학책들을 읽을 수 있는 언어. 몇 달 안 되는 이번 달까지 그 수업을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고 암기도 안 되고 언어라는 게 그렇듯 계속 해봤자 한동안 초보자 수준일 뿐이고.

그러나 올해 무엇을 했나 돌아보니 그 한 가지가 있다. 몇 가지 일들에서 떨어지고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았던 건 지난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올해는 무언가 한 가지는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은 일이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않은가, 여기고 싶다.

직업과는 상관없는, 좋아하고 배우고 싶었던 일들,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시도해 가다 보면 상실감이나 위축감만 느끼면서 나이 들어가진 않게 될 거라 믿는다. 생활에 의욕도 생기고. 게다가 습관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니까.

12월 중순이 시작되었다. 내년에는 무엇을 새로 시작하고 배울까, 궁리하고 결정할 시간만큼은 아직 남아 있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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