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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라도 인재라면 중용…당태종에 배우는 겸손의 리더십
당태종·신하들의 천하경영법
난세·치세 주제별 리더십 풀이
창업·국가·기업경영에 큰 시사

“君强臣强 상황선 토사구팽 불가피”
고전연구가 차별화된 해석도 눈길


정관정요
신동준 지음
위즈덤하우스
당(唐) 태종의 명신으로 꼽히는 위징은 원래 이세민의 적인 형 이건성의 참모였다. 위징은 이건성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온갖 구실을 대어 이세민을 미리 제거할 것을 건의했다. 현무문의 난 이후 패권을 쥔 당 태종에게 누군가가 그 일을 폭로하자 태종은 위징을 불러, “그대는 어찌해 우리 형제 사이를 이간질했는가”고 물었다. 이에 위징은 “당시 저는 태자의 참모였으니 당연히 그분을 위한 계책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태자는 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제 의견을 따랐다면 지금과 같은 말로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고 답했다. 이세민은 위징의 정직함과 담력, 식견을 알아보고 이내 간의대부에 임명했다. 이는 당 태종의 과감한 인재등용을 보여주는 ‘정관지치(貞觀之治)’의 상징적 사건이다. 당 태종의 이런 인재관은 ‘정관정요’ ‘공평’에도 나온다. 정관 초년 당 태종은 신하들에게 인재라면 친척과 원수를 피하지 말고 천거하라고 지시했다.

‘제왕학의 교본’으로 불리는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 태종과 그를 보좌한 위징과 방현령, 두여회 등 명신이 치국평천하 전반을 놓고 나눈 대화다. 난세에 필요한 패도의 창업 논리와 치세에 통용되는 왕도의 수성 논리를 하나로 녹여내 국가와 기업 경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힘써온 고전연구가 신동준 씨가 펴낸 ‘정관정요’(위즈덤하우스)는 특히 당 태종의 겸손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저자는 ‘나라를 세울 때의 리더십’과 ‘나라를 다스릴 때의 리더십’으로 나누고, ‘생사를 건 승부수로 나라를 얻는 법’ ‘눈과 귀를 열어 천하의 인재를 그러모으는 법’ ‘독선을 버리고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법’ ‘겸허한 자세로 태평천하의 기틀을 만드는 법’ 등 주제별로 갈라 풀이해 나간다.

“당 태종은 자신의 무공을 기리기 위해 신하들을 폄하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제왕의 자리에 오르면 신하들을
내려다보기 십상이다. 특히 당 태종처럼 큰 무공을 세움으로써 사실상의 창업주 역할을 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
다.”(본문 중)

당 태종은 최고통치자인 제왕의 잘못된 행동은 백성은 물론 나라 전체에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부족함을 과감히 받아들여 위징, 방현령 등 자신을 비춰줄 거울 같은 스승과 신하를 곁에 두고 천하를 다스렸다. 이를테면 그는 잘 듣는 밝은 귀를 가진 사람이었다.

‘정관정요’의 다양한 일화는 명신들이 당 태종을 도와 정관지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 당 태종 즉위 해인 무덕 9년, 태종은 장병의 징집 명령을 내린다. 위징은 이 조서를 거머쥐고 발송하지 않았다. 태종이 여러 번 재촉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로한 태종이 위징을 불러 항명 행위를 꾸짖자 위징은 이렇게 간했다.

“신이 듣건대 ‘연못 속의 물을 말린 뒤 물고기를 잡으면 결코 잡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이듬해에는 물고기를 볼 수 없고, 숲을 태워 사냥을 하면 짐승을 잡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이듬해에는 짐승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차남 이상이 모두 군대를 가면 세금과 각종 부역은 누구에게서 취할 것입니까?”

당 태종의 덕정에는 이런 위징의 공이 컸다. 태평성세가 지속되자 대신들 모두 이세민의 은덕을 극구 찬양했지만 오직 위징만은 열 가지 결점을 지적했다. 자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태종은 이를 병풍에 옮겨적고 아침 저녁으로 읽어보며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가 초심을 잃지 않았던 이유다.

당 태종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알았다. 재위 도중 제왕이 스스로의 잘못을 책망하는 이른바 ‘죄기조(罪己詔)’를 발표했을 정도다. 개국공신 당인홍이 뇌물을 받아 사형 위기에 처하자 태종은 5품 이상의 관인들을 태극전에 불러놓고 석고대죄를 자청해 당인홍의 사형을 면하게 했다. 

당 태종
최고의 성군이라는 당 태종에게도 태자인 형을 몰아낸 패륜의 꼬리표가 달려 있다. 저자는 군웅을 토벌하고 보위를 차지하는 데는 상황이 난세인 만큼 패도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풀이한다. 명분보다 실리 쪽이다.

저자의 남다른 해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령 토사구팽을 저자는 창업 초기 혼란기 기틀을 확고히 하는 데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건국 초기에는 군강신강(君强臣强)의 모습을 띠게 되는데 강신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 군약신강의 상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저자는 큰 틀에서 보면 유혈참극의 비난을 홀로 뒤집어쓴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낮추는 행보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정관정요의 치세의 핵심은 무위지치(無爲之治)라 할 수 있다.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는 상태다. 이 중심에 낮춤의 리더십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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