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치세 주제별 리더십 풀이
창업·국가·기업경영에 큰 시사
“君强臣强 상황선 토사구팽 불가피”
고전연구가 차별화된 해석도 눈길
정관정요 신동준 지음 위즈덤하우스 |
‘제왕학의 교본’으로 불리는 ‘정관정요(貞觀政要)’는 당 태종과 그를 보좌한 위징과 방현령, 두여회 등 명신이 치국평천하 전반을 놓고 나눈 대화다. 난세에 필요한 패도의 창업 논리와 치세에 통용되는 왕도의 수성 논리를 하나로 녹여내 국가와 기업 경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힘써온 고전연구가 신동준 씨가 펴낸 ‘정관정요’(위즈덤하우스)는 특히 당 태종의 겸손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저자는 ‘나라를 세울 때의 리더십’과 ‘나라를 다스릴 때의 리더십’으로 나누고, ‘생사를 건 승부수로 나라를 얻는 법’ ‘눈과 귀를 열어 천하의 인재를 그러모으는 법’ ‘독선을 버리고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법’ ‘겸허한 자세로 태평천하의 기틀을 만드는 법’ 등 주제별로 갈라 풀이해 나간다.
“당 태종은 자신의 무공을 기리기 위해 신하들을 폄하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제왕의 자리에 오르면 신하들을 내려다보기 십상이다. 특히 당 태종처럼 큰 무공을 세움으로써 사실상의 창업주 역할을 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 다.”(본문 중) |
당 태종은 최고통치자인 제왕의 잘못된 행동은 백성은 물론 나라 전체에 재앙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부족함을 과감히 받아들여 위징, 방현령 등 자신을 비춰줄 거울 같은 스승과 신하를 곁에 두고 천하를 다스렸다. 이를테면 그는 잘 듣는 밝은 귀를 가진 사람이었다.
‘정관정요’의 다양한 일화는 명신들이 당 태종을 도와 정관지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다. 당 태종 즉위 해인 무덕 9년, 태종은 장병의 징집 명령을 내린다. 위징은 이 조서를 거머쥐고 발송하지 않았다. 태종이 여러 번 재촉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로한 태종이 위징을 불러 항명 행위를 꾸짖자 위징은 이렇게 간했다.
“신이 듣건대 ‘연못 속의 물을 말린 뒤 물고기를 잡으면 결코 잡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이듬해에는 물고기를 볼 수 없고, 숲을 태워 사냥을 하면 짐승을 잡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이듬해에는 짐승을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차남 이상이 모두 군대를 가면 세금과 각종 부역은 누구에게서 취할 것입니까?”
당 태종의 덕정에는 이런 위징의 공이 컸다. 태평성세가 지속되자 대신들 모두 이세민의 은덕을 극구 찬양했지만 오직 위징만은 열 가지 결점을 지적했다. 자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태종은 이를 병풍에 옮겨적고 아침 저녁으로 읽어보며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가 초심을 잃지 않았던 이유다.
당 태종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 줄 알았다. 재위 도중 제왕이 스스로의 잘못을 책망하는 이른바 ‘죄기조(罪己詔)’를 발표했을 정도다. 개국공신 당인홍이 뇌물을 받아 사형 위기에 처하자 태종은 5품 이상의 관인들을 태극전에 불러놓고 석고대죄를 자청해 당인홍의 사형을 면하게 했다.
당 태종 |
저자의 남다른 해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가령 토사구팽을 저자는 창업 초기 혼란기 기틀을 확고히 하는 데 불가피한 것으로 해석한다. 즉, 건국 초기에는 군강신강(君强臣强)의 모습을 띠게 되는데 강신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 군약신강의 상황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저자는 큰 틀에서 보면 유혈참극의 비난을 홀로 뒤집어쓴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낮추는 행보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정관정요의 치세의 핵심은 무위지치(無爲之治)라 할 수 있다.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지는 상태다. 이 중심에 낮춤의 리더십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