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3 · 1운동 그 후…아나키스트 신채호
신채호 다시 읽기
이호룡 지음
돌베개
신채호(1880~1936) 탄생 133주년을 앞두고 한국의 대표적 민족주의자라고 알려진 신채호를 아나키스트의 측면에서 재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한국의 아나키즘 연구에 천착해온 역사학자 이호룡 씨가 펴낸 ‘신채호 다시 읽기’(돌베개)는 신채호의 생애 중후반을 지배했던 아나키즘적 사유와 활동에 주목한다. 저자는 먼저 신채호가 민족주의자의 이미지로 고착된 배경으로 1960~70년대 시대상황을 지적한다. 5ㆍ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일본 관동군 장교였던 자신의 이력을 가려줄 도구로 민족주의를 내걸었고, 박 정권에 저항하던 민주화운동 세력들 역시 민족주의 사상을 실천에 옮긴 저항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단재 신채호를 부각시키며 단재는 일약 민족주의 표상으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아나키스트로서의 신채호는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사상적 변화를 겪게 된다. 1916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러시아혁명을 목격하며 사회개조, 세계개조론과 결합된 대동사상을 수용하게 된다. 1919년 3ㆍ1 운동은 그를 결정적으로 아나키즘으로 몰고 간다. 저자는 신채호의 아나키즘으로의 사상적 변화를 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것으로 본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노선에 비판적이었던 단재가 기운 게 아나키즘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 단재의 아나키즘 연구의 한계도 지적한다. ‘신채호가 아나키즘적 방법론을 채택한 것에 불과할 뿐 아나키스트는 아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는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을 들어 민중직접혁명론을 제창했던 아나키즘 수용의 선구자였다고 맞선다. 신채호가 언제부터 아나키즘을 수용했는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정설은 ‘낭객의 신년만필’이 발표된 1925년 이후이지만 그는 3ㆍ1 운동 시점으로 수용시기를 앞당긴다. 신채호의 삶과 사상의 궤적을 꼼꼼히 살펴 한국 근대사상의 선구자인 신채호에 대한 새로운 연구과제를 던져놓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