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형석의 상상력 사전> 어젯밤 당신이 꾼 꿈은…일상인가 욕망인가
안개·매연에 갇힌 잿빛 서울도심
어머니와 함께 밥 먹고 로또 당첨…
현실-소망 경계선에 핀 꿈의 토로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다큐 ‘풍경’
한국사회 외국인노동자 꿈 담아
우리의 내면에 감춰진 진실찾기


“사람에게 있어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하루 중 밤에 일어난다. 바로 자기 자신의 침대에서 말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항구에 있는 컨테이너 터미널에서도 볼 수 없는 분주한 작업이다. 꿈에서 우리의 정신은 미처 정돈되지 않은 채 힘든 작업들을 처리한다. 그곳에서는 우리들의 영혼이 가장 바라는 비밀스러운 욕망이 드러난다. 그러니 꿈을 관찰한다면 우리의 이면이 진실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중)

한국에서의 고달픈 2년 반. 노동의 시간을 뒤로 하며 고향으로 떠나는 동티모르의 청년 아우구스티노는 인천공항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제가 여기 있던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에서 꾼 꿈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 꿈이었습니다. 밤마다 어머니꿈을 꾸었죠. 제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마음은 고향에 있었습니다.”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은 우리 사회의 이방인,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꾼 ‘꿈’을 담았다. 카메라는 안개와 매연으로 온통 뿌연 서울의 공기를 뚫고 이주노동자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간다. 무너질 듯 낮은 천장, 어두컴컴한 실내를 가득 채운 기계와 일감들. 나무를 깎고 다듬어 가구를 조립하는 이들도 있고, 철제 마스크를 쓰고 용접에 한창인 사람도 있다. 도시의 잿빛 하늘도, 이방의 삶이 둥지 튼 좁은 골목도, 노동으로 지친 육신을 잠시 뉘어 놓는 작은 방도 무심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그 속에서 꾸는 꿈은 수만가지 표정을 가졌다. 애틋해서 깨기 싫은 꿈도 있고, 너무 근사해서 현실이라 믿고 싶은 꿈도 있으며,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은 꿈도 있다. 

단편 다큐멘터리를 장편으로 재구성한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다큐멘터리‘ 풍경’은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주제로 담고 있다. 그는 특히 수많은 이방인들 중 경기도와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의 고단한 삶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아버지가 등 뒤에서 회초리로 때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는 20년간 편찮으셨고 술만 먹으면 개처럼 행동했어요. 한국에서 꾼 첫꿈입니다.”(호앙 타인ㆍ베트남)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출신 타실라는 꿈에서나마 행복했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비롯해 모든 회사 분들이 모두 저와 함께 있었어요. 다들 스리랑카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깨어보니 기숙사 방이었고 모든 게 꿈이었어요.”

한국에서 로또에 당첨돼 갖고 싶었던 고급차인 현대자동차를 샀다는 필리핀의 청년,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함께 실제로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제주도를 행복하게 여행했다는 방글라데시의 노동자, 고향에서 모든 가족들이 모여 잔치를 했다는 캄보디아 이주민. 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현실을 닮은 악몽을 거듭하는 이들도 있었다. 식당 납품용 돼지 내장을 손질하는 중국 청년은 “집에 돌아와 잠이 들어도 돼지 내장을 손질하는 꿈을 꾸곤 한다. 법무부로부터 추방명령을 받는 꿈도 있다. 더 이상 이런 일을 하기 싫다 중국으로 돌아가고만 싶다”고 말한다. 3년간 한국에서 일했다는 동남아 노동자는 “사장님에게 ‘내일부터는 일을 그만두겠습니다’고 말하고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출근해 회사를 그만 다니겠다고 말하는 꿈을 반복해서 5번이나 꿨다”고 말했다.

옌벤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한 소설가ㆍ교수 출신인 장률 감독은 ‘경계’의 작가다. ‘두만강’에선 북한-중국 국경선을 넘나들며 사는 아이들과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그렸고, ‘경계’에선 몽골과 중국의 변경 초원지대를 배경으로 나무 묘목을 심으며 사막화되는 동네를 지키려는 남자와 탈북한 여인, 그리고 그녀의 아들 이야기를 담았다. ‘망종’은 중국 변방에서 살며 조선 김치를 파는 것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한 조선족 여인을 주인공으로 했다. 뿌리를 잃은 이방인, 변방과 주변의 삶, 이름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중국에 사는 한국계 감독, 장률 영화의 테마였다.

그의 첫 다큐멘터리 역시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고향을 떠난 자들의 이야기이며, 국경을 넘나드는 주변인들의 삶이며, 현실과 소망의 경계에서 피어난 꿈의 토로이다. 꿈은 어젯밤 꿈이기도 하지만, 내일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꿈이란 어제와 내일의 경계인 밤에 찾는 손님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 있는 꿈을 꿨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의 ‘일상’은 누군가의 ‘꿈’일 수 있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이방인들의 꿈을 통해 우리 마음과 대한민국의 ‘풍경’을 보여주고 이렇게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제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그리고 대한민국이 꾸는 꿈이란 무엇일까요?”

su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