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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스토브리그 지켜보기
프로야구의 색다른 재미 중 하나는 스토브리그다. 냉혹한 프로세계의 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액연봉의 과실을 누리는 살아남은 자의 환희와 그렇지 못한 자의 비애가 엇갈리는 현장이 바로 스토브리그다. 그러나 경쟁에서 낙오한 선수가 재기의 기회를 잡는 곳이기도 하다.

스토브리그의 묘미는 아무래도 이적시장에 있다. 먼저 자유계약(FA) 대상 선수들이 각 구단과 밀고 당기는 몸값 협상 과정이 흥미롭다. 프로에서 몸값은 곧 자신의 능력을 의미하며, 선수들의 자존심이자 존재 이유다. 4년 75억원이라는 사상 최고 계약을 끌어낸 롯데 강민호 선수를 비롯해 정근우, 이용규 등 10여명의 FA선수가 화끈한 대우를 받으며 재계약하거나 팀을 옮겼다. 거품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실력만큼 보상받는 자본주의 논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적용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적시장의 참맛은 2차 트레이드에 있다. FA시장이 명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이라면, 2차 트레이드는 재활용시장이라 할 수 있다. 각 구단이 필요하다고 지정한 40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이 시장에 나온다. 좋은 기량을 가지고도 포지션이 겹치거나 부상 등 이런 저런 사정으로 보호명단에 들지 못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이런 선수들을 구단은 싼 값에 조달해 전력을 보강하고, 선택된 선수들은 재기의 동아줄을 다시 잡을 수 있다.

현재 롯데 마무리 투수로 맹활약 중인 김성배 선수가 그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는 이렇게 이적한 후 지난 두 시즌 동안 5승 33세이브라는 엄청난 성적을 올렸다. 신생구단 돌풍의 주인공 NC다이노스 이재학 선수도 최대 수혜자다. 프로야구에 입문한 뒤 제대로 1군 생활도 못해봤지만 NC에 새 둥지를 틀면서 잠재된 기량을 폭발시켜 평생 단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신인상까지 움켜쥐었다. 올해는 모두 34명의 선수가 2차 트레이드를 통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이들 중 누가 성공신화를 쓸지 지켜보는 것도 내년 시즌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이게 끝이 아니다. 패자부활의 기회는 또 있다. 2차 트레이드가 마무리되면 각 구단은 65명 이내의 최종 보류선수 명단을 발표한다. 여기에도 이름이 없다면 방출이다. 선수로서 생명이 끝난 것이다. 재활용도 어렵다지만 땡처리 시장에서 일말의 기회를 기대할 수 있다. 메이저 리거 출신 두산 김선우 선수도 며칠 전 이 시장에서 LG와 재계약을 했다. 극히 일부지만 연습생 신분으로 되돌아가 절치부심 기회를 노리는 선수들도 있다. 노력하고 인내하면 반드시 때가 온다는 사실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정글의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 프로의 세계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합리적 질서가 있다. 경쟁에서 밀려도 다시 일어설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진다. 물론 그 기회를 살리는 노력은 각자의 몫이다. 따지고 보면 바깥 사회가 더 기회에 인색하다. 아예 패자부활전이란 용어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다. 프로 야구 최고 타자로 자리매김한 넥센 박병호 선수 역시 패자부활의 기회를 살려 보란 듯 일어섰다. 우리 사회도 패자부활의 함성이 넘쳐 나길 기대해 본다.


정재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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