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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허무주의…老철학자 지적방랑 탐구
사회학자 시선으로 본 박이문의 삶·사상
대담 형식 ‘영혼의 둥지’ 찾는 과정 그려

“예술과 비예술 구별하는 경계는
아름다움 아닌 새로움 창조여부”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
정수복 지음
알마
‘둥지의 철학자’ 박이문에게는 ‘지적 방랑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장래가 촉망되는 문학평론가이자 대학교수였던 서른한 살에 안정된 자리를 뿌리치고 서울을 떠나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하다 3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평생 인생과 세상에 대한 총체적이며 투명한 앎을 추구한 그의 지적 방랑과 탐색은 100권의 책으로 남았다.

사회학자 정수복이 18시간에 걸친 박이문과의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의 저서의 깊이 읽기를 통해 박이문의 삶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는 애초 대담집으로 구성됐으나 평전의 형식이 됐다.

저자가 그려내는 박이문은 입체적이다. 500편의 시를 쓴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밑바닥엔 종교인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저자는 박이문의 학문적 역정을 “개인적으로 서양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세계인으로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종합해 인류문명의 미래를 위한 보편적인 철학을 구성하는 과정”이었다고 압축해낸다.

예술철학은 박이문 철학 작업의 핵심 축이다. 그는 미국 생활 시절, 예술철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아서 단토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삶 속에서 질문하고 찾아내는 작업을 해온 박이문은 이내 독창적인 길을 찾아낸다. 인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인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의 예술작품인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가라는 예술 생태주의로 단토를 넘어선다. 그의 독창적인 양태론적 예술이론 역시 플라톤에서 칸트를 거쳐 하이데거, 단토, 굿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론가가 펼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만족스럽지 못한 답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다.

박이문의 독창적인 철학은 ‘둥지의 철학’으로 정리된다. 2010년 팔순에 펴낸 ‘둥지의 철학’은 50년 철학하기의 결정판이다. 박이문은 자신의 철학적 이미지로 둥지를 제시한다. 모든 새들이 깃들 둥지를 갖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름의 개념적 둥지를 만들고 개선한다는 것이다. “새의 둥지가 안전과 평화를 제공하듯 둥지철학은 인간 각각의 자유와 행복을 목표로 한다. 자신의 삶에서 만난 다양한 개념과 언어를 활용해 관념의 둥지를 짓는다. 누구라도 인간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관념의 둥지를 틀어야만 한다.”

“신자유주의나 사회주의 무엇 하나로 사회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얽히고 연결되면서 사회가
계속 변화해나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21세기의 새로운 문명도 둥지를 짓듯이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이
루어지고 늘 리모델링하는 둥지짓기와 같은 것이 되어야한다는 거지요.”(본문 중)

박이문은 ‘둥지’라는 시적 개념을 통해 평생 시와 철학 사이에 느꼈던 갈등을 해소한 셈이다.

이 책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총체적 앎을 추구한 원로 철학자와 그의 책을 읽고 성장한 사회학자가 오랜 기간 만나 나눈 이야기로,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 의미에 대해 고뇌하는 이들에게 옆자리를 내준다. 삶의 무의미를 극심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삶의 의미를 치열하게 추구하게 마련. 박이문은 중학생 때부터 심한 허무의 병을 앓았으며, 환갑이 지난 나이가 돼서도 “나는 아직도 지적 혼란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솔직히 말해서 실존적 허탈감을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책은 존재-의미 매트릭스, 노장 사상의 현대적 의미 등 박이문의 독창적 철학을 대화로 풀어놓아 비교 저서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박이문 저작 전체에 대한 논평을 담았다는 점도 기존의 단편적인 박이문 이해와 차별화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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