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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형곤> 금투협회장 지금이 존재이유를 알릴 때다
증권부 기자 시절 런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진 증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우리로 따지면 자산운용협회쯤 되는 곳을 들렀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불쑥 던진 질문에 서로가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여기 회장은 어디 출신이냐는 그냥 지나가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영국 재무부 국장 출신이라는 것이다.

“앗 parachute(낙하산)다”고 하자 이 여성 관계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를 낙하산이라고 하며 늘 논란이 된다고 하자, 그는 정색을 하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협회는 전적으로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고 따라서 정부와 직통할 수 있는 속칭 ‘힘 있는’ 사람이 그런 역할을 맡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어본 쪽이 오히려 머쓱해졌다.

금융투자협회 민선회장 제도가 2대 박종수 회장까지 낙하산이 아닌 민선으로 선출함으로써 성공리에 정착돼 가고 있다. 금융 관련 협회장으로는 유일한 민선이다. 증권사와 운용사를 합쳐 무려 160여개 회원사의 투표를 통해 당선된다. 선출과정을 봐도 금융투자협회장은 모든 면에서 당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순수 민간의 손에 의해 뽑힌, 5만명에 달하는 국내 자본시장 종사자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자신들이 뽑은 협회장과 협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올 들어 유례없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 살아왔고, 내년이라고 달라질 기미가 없다. 그런데도 협회와 협회장이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있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협회 직원과 협회장의 연봉은 여타 금융 관련 협회에 비해 가장 높은 편이다.

업계의 현안인 장기세제혜택펀드 도입은 국회에서 표류한 지가 벌써 1년이다. 이 상품은 2030세대에 저축을 통해 삶의 희망을 갖게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제도인데도 말이다. 앞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증권사들이 2011년부터 일찌감치 자본확충까지 해뒀지만 법 통과가 미뤄지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영업용순자산비율(NCR) 규제 완화도 업계의 목소리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박 회장도 비공식적으로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하는 대관 업무의 필요성을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말뿐이지 실제 액션을 취한 것은 없다. 지금은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 협회 부회장으로 기획재정부 출신의 남진웅 씨를 영입한 걸로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공직 시절 증권 쪽은 해본 적이 없다.

현재 박종수(66) 회장보다 나이가 많은 최고경영자(CEO)는 금융투자업계에는 거의 없다. 그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CEO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금융투자협회장의 민선은 업계가 어렵게 쟁취한 결과물이다. 업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수록 협회는 오히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렵게 얻어낸 결과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협회와 협회장의 발상의 전환이 절실해 보인다. 

김형곤 (증권부장) kim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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