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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 X파일] ‘얼렁뚱땅’이 낳은 전월세시장 괴물들
[헤럴드경제 =윤현종 기자] #1. 생활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전월세 거주자의 정신ㆍ물질적 삶은 더 피폐해집니다. 전세입자는 집주인이 혹시라도 계약 만료 전에 전셋값을 올려달라면 어쩌나 걱정합니다. 매달 집세가 나가는 월세입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임대료 부담으로 생필품 소비를 줄인다는 도시저소득층이 100명 중 21명에 달한다는 국토연구원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2. 임대료가 높아지는 건 수요, 즉 세입자가 먼저 늘어났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레 집주인(공급자)이 되는 이들도 속도는 느리지만 뒤따라 늘어납니다. 월세나 전세를 유일한 수입원으로 삼는 집주인이 증가합니다. 임대거주는 점차 보편화 합니다. 이제 세입자 뿐 아니라 집주인도 피곤한 시대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교묘한 수법으로 보증금이나 집세 내기를 거부하고 ‘배째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세입자를 괴롭히는 집주인, 집주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세입자. 기자의 눈엔 양자 모두가 한국의 허술한 전월세계약제도가 낳은 ‘괴물’로 보입니다. 


이 괴물들은 그늘진 곳에 있습니다. 찾기 어렵습니다. 찾는다 해도 피해자나 가해자 한쪽 이야기만 듣는 건 곤란합니다. 각자의 입장만 좇다보면 죽도밥도 안되기 때문이죠. 이들 중간에 선 중개업자를 만나 객관성을 따져야 합니다. 기자가 임대차분쟁(‘집주인들 악성세입자 골머리’ㆍ헤럴드경제 2013년 11월 28일자)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제대로 증언해 줄 중개업자를 찾는 일이가장 힘들었습니다. 왜였을까요. 한 공인중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소 특수한 ‘계약사고’인만큼 해당 사례를 말하는 순간 그 케이스의 당사자는 (익명 언급으로 처리해도)내가 한 말이란 걸 알아챈다”

그 뒤는 예상 가능합니다. 발설한 중개업자는 동네에서 신뢰를 잃고 결국엔 ‘장삿거리 (거래문의)’가 끊긴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평판에 의지하는 게 이 바닥 일이니까요. 심지어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물건을 거래하는 어떤 여자 공인중개사는 기자에게 “이 동네엔 그런 계약사고가 단 한 건도 없으니 다른데 알아보라”며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뭘 알고싶은거냐”는, 다소 감정섞인 불쾌감을 표하며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확인결과 타워팰리스에도 명도소송을 통해 쫓겨난 세입자는 있었습니다.

임대차 분쟁이 남기는 상처는 세입자나 집주인 모두에게 꽤 커보였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많은 부분에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임대차계약제도 자체에 있습니다.

집주인은 전월세 재계약을 앞두고 괴물로 변하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보증금 무한인상입니다. 기자의 한 지인은 “1억5000만원짜리 전세를 2년만에 2억1000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얘길 듣고 기절할 뻔 했다”고 털어놓습니다.인상률이 40%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2년 후 재계약 시엔 집주인의 임대료 인상한도에 제한이 없기때문입니다. 이는 20년 전 판례에 근거합니다. 1993년 대법원은 ‘…인상 한도는 계약기간 중에 임대료를 올리는 경우에만 적용되고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하는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계약기간 내 보증금 인상한도는 5%입니다.

말로 한 약속도 계약사항으로 인정하다보니 집주인이 못들었다고 발뺌하면 입증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게 “그만 살고 나가겠다”는 세입자의 구두요청에 집주인이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죠. 집주인은 한술 더 떠 “나갈테면 알아서 방빼고 거기서 보증금 챙겨 나가라“고 몰아부칩니다.

괴물 세입자는 어떤가요. 이들은 명도소송의 약점을 매우 ‘스마트’하게 이용합니다. 수차례의 걸친 내용증명을 무시하고 집주인이 법원을 통해 보내는 관련서류도 안 받습니다. 법원 사무절차는 소위 ‘도달주의’입니다. 수령인이 못 받았다고 하면 소송은 그만큼 연기됩니다. 소송기간은 최대 2년까지 걸립니다. 2년 간 세입자는 사실상 법망을 회피한 ‘무단 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상습범들은 일부러 예전 주소가 기입된 주민증을 계약서 작성시 내보여 자신의 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임대차계약 때 세입자는 주민등록 등본 한 통조차 필요없습니다. 세입자의 신분확인을 주민증 하나에만 의존하다보니 빚어지는 폐해입니다.

해외는 어떨까요. 이같은 괴물들의 발생을 세심한 제도적 장치로 차단합니다. 독일의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 이익단체의 대표가 모두 참여해 ‘임대료 일람표’를 만듭니다. 임대차계약과 가격결정은 이를 근거로 합니다. 집주인의 터무니없는 임대료 인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배째는 임차인의 강제퇴거를 신속히 결정합니다. 15일이면 충분합니다. 프랑스는 임차인의 보증인을 요구해 신분파악을 철저히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임대차계약을 지나치게 ‘인정(人情)’에 의존해 인식해 왔던 건 아닐까요. ‘진상’이 생겨도 막을 방법이 모호한 현실에선 분쟁이 생기면 모두가 패자일 뿐입니다. 보다 촘촘한 임대차계약제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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