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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함영훈> 서민형 비즈니스의 비애, 그 원인을 들여다보니...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사업 연결고리를 물색하기가 쉽지 않다. 사업상 내가 다소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거나 서로 대등한 위치에 놓여 있을 경우엔 실증적인 옥석을 가리는 일만 하면 되지만, 나보다 유리한 경우, 즉 속칭 ‘갑’과는 전화통화 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내가 더 아쉽고, 그는 아쉬울 것이 없어 자신에게 몰리는 여러 사람 중 유리한 조건을 고르면 그만인 경우이다.

이른바 ‘을’ 입장에서는 ‘갑’으로 부터 간택받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유리한 조건’에는 등급이 있다.

최하등급은 “그 사람, 나의 지인과 아는 사이”이다. 이 정도면 전화통화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나 줄 정도는 못 된다. 미국의 3억인구가 여섯단계 인간네트워크로 모두 연결되고, 한국의 5천만은 서너단계만 거치면 모두가 지인이 되는 마당에 ‘지인의 지인’이라는 끈으로 나의 얘기를 그가 경청해 주기를 기대하기엔 턱도 없다. 서민형 비즈니스의 비애이다.

중간등급은 학연 또는 지연쯤 된다. 비즈니스 목적을 앞세우지 않은 채 접촉을 시도하면 만나주기는 할 정도이다. 일단 만난 다음에는 서로가 공유했을 법한 지난날 흔적들을 되짚어보지만, 비즈니스 얘기를 자세히 늘어놓기가 쉽지 않다. 어렵게 한마디 꺼내도 “음, 그래, 설명(PT)자료 가져와봐” 수준이다.

중간 등급, 최하등급 짜리 인연은 이제 객관적인 설명자료에서 승부를 걸어보아야 한다. 기술이 뛰어나다든지, 비전이 좋다든지 하는 것들을 잘 설명해서, ‘갑’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조건을 쥐어 짜내야 하는 것이다.

최상 등급은 어떤가. 권력을 업는 것이거나, 숱한 인연이 중첩돼 있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경남 명문가 몇 대손으로 민정수석님과 5촌이고 부산에서 사업할 때 청와대 비서실장님과 호형호제하던 사이” 쯤 된다. 이처럼 ‘파워플한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 최상등급의 인연 정도면, 만나주지 않을 ‘갑’이 없다. ‘갑’의 입장에서는 ‘을’이 갖고 있는 동아줄을 이용할 수 있기에 자신에게 참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는 것이다. 이 때 비즈니스의 객관적 조건은 재량권과 정성적 요소를 통해 얼마든지 잘 만들어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현 주소이다.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돈이 되나’, ‘나라에 도움이 되나’ 등의 목적의식에 따라 객관적인 조건들을 따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튼튼한 동아줄’의 경우 아직도 약발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회의 성숙도는 전자가 확산되고 후자가 퇴보하는 것임을 삼척동자도 안다.

다시 후자가 창궐하려는 조짐이다. 여러 이유 중에 핵심적인 것은 핵심권력 기관장이 특정 지역이나 직역에 강하게 쏠려있는 ‘인사’ 때문이다. 대법원장, 헌재 소장, 감사원장, 검찰총장,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이 모두 PK(부산,경남)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했지만, 숱한 인재풀에서 하필 그쪽 사람만 뽑아 놓은 것은 인사 설계가 합리적이지 못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역감정'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는 김 실장은 알고보면 영-호남 부부이고, 박한철 헌재소장과 김진태 총장후보는 각각 주역과 한학에 조예가 깊은 ‘선비형’으로 꼽히며, 홍경식 민정수석은 ‘균형감 있는 신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 만으로도 작동하는 ‘인사편중에 따른 이권의 쏠림’을 우리는 현대사에서 충분히 목도했다. 비즈니스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더욱 절절히 느낄 것이다.

계약, 거래, 인가, 허가, 사업편의 등에 권력자와 끈이 닿는 지역이나 분야에서 독식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최상 등급’의 파트너에 대해서는 사업의 객관성을 파악할 PT자료 조차 보지 않고 통과시키는 관행이 강화될 뿐이다.

한 검찰간부 출신 변호사는 “사법 사정 라인이 한 지역 사람으로만 짜이면, 인사 인허가 같은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사 인허가권은 모든 이권으로 통한다.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은 영향력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함이다”고 꼬집었다.

편중인사는 다음 인사를 예상케하고, 이는 장차 큰 벼슬을 얻을 사람에게 미리 초과수익을 안기는 ‘후관예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5년에 불과한 기간, 성공한 권력으로 남으려면 겸손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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