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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황해창> 숭례문만 부실일까
국보 제1호 숭례문 부실 복원 파문이 크다. 이제는 국보 제24호인 석굴암으로 논란이 번진다. 석굴암의 백미인 본존불에 1m 정도 크기를 포함해 수십 개의 균열이 발견됐고, 석굴 전체로 따지면 무려 56개의 결함이 확인됐다. 이대로 두면 머잖아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답답하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15일자 일부 조간신문 기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전날 문화재청이 긴급점검을 하면서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내용도 결과도 쉬쉬했다는 것이다. 인근 불국사 주차장에서부터 스님까지 나서 사진촬영을 가로막는 등 말 그대로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도대체 원천봉쇄와 함구령이 이런 현장을 왜 지배해야 하나. 비밀주의 극치다. 뒤집으면 투명성 제로다. 따져보면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또는 민간인 접근금지도 모자라 모골이 송연한 해골 경고판 부류를 부착해 놓은 곳일수록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화재 비리만이 아니다. 원전비리, 무기비리, 의료비리, 법조비리 등등. 콘텐츠가 하나같이 고차원이거나 생사여탈과도 직결돼 있다. 이런 동네 공직은 퇴직 후 전관예우까지 꼬박꼬박 받아 챙긴다.

다시 숭례문을 보자. 복원 부실은 한 마디로 대참사다. 국보 중의 국보를 두 번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2008년 2월 10일 저녁, 졸지에 화마에 무너져 내린 지 5년 3개월만에 거짓말 같이 정갈한 자태로 다시 그 자리에 우뚝 섰고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잔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복원된 지 5개월 만에 단청이 벗겨지고 추녀와 기둥이 뒤틀리고 쩍쩍 갈라진다. 차라리 벗겨진 것은 우리의 ‘민낯’이고, 뒤틀린 것은 ‘기본’이고, 갈라진 것은 ‘양심’이다.

그렇다면 기와는 어떤가? 전통수재 기법을 적용했다지만 한파에 툭툭 터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작 당시 병중이던 80대 노구의 장인(匠人)이 과연 생산과정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도 의문이라고 한다. 예산집행도 도깨비다. 복구 핵심인 목재 구입에는 2억 몇 천만원을 쓰면서 홍보에는 수십억원을 펑펑 썼다고 한다. 홍보라니? 거창하게 가림막까지 치기에 믿고 맡긴 언론이고 국민인데 무슨 홍보가 더 필요했나. 게다가 인건비마저 싸구려였으니 부실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다.

여기에 조급증까지 도졌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보자. 난리통에도 양질의 벚나무를 벌채해 그 자리에서 2년 정도 묵혀 진을 뺀 뒤 경판용 판자를 켜 다시 소금물에 3년 넘게 담갔다 완전 자연건조시켰다고 한다. 천년세월에 끄떡없는 이유다. 하물며 바둑판 재목도 금가게 다루지 않는다.

숭례문이 불타 없어진 건 짐 싸던 노무현정부 때지만, 복원은 고스란히 이명박(MB)정부 때 일이다. 호사가들이 관리 부실보다 국운이 어떠네 했으니 MB정부로선 크게 억울했을 것이고, 임기 내 준공 유혹을 받았음 직하다. 더구나 뚝딱 뚝딱 터널 뚫고 다리 놓는 돌관(突貫)형 기질 아닌가. 그렇다고 정치적 책임 운운은 우습다. 숭례문만의 부실도 아니다. 결국 국민적 의식과 양심의 밑천이 문제다.

황해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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