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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색한 우리말 사용, 뮤지컬 ‘시간의 사용’
‘보이첵’ ‘휴먼코미디’는 올 7월 한달 내내 명동예술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10년 가량 된 장수 공연들로, 재공연 때마다 관객 호응이 열렬하다. 재관람 관객도 많고, 공연을 처음 본 이도 공연장을 나설 땐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팬이 되곤 한다. 대학로 아트센터K 세모극장에서 17일 개막한 뮤지컬 ‘시간의 사용’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신작이란 점만으로도 관객의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 ‘겨울연가’, 영화 ‘실미도’ ‘올드보이’ ‘건축학개론’의 음악을 맡았던 이지수 작곡가의 참여는, 뮤지컬 넘버에 대한 기대감도 높인다.

줄거리는 37세 동갑내기 작가와 팝아티스트, 여행가, 노동가 등 4명이 20대의 꿈많던 시절을 반추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게 된 30대에는 각자의 개성을 잃고 시간의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드라큐라처럼 영원히 죽지 않는 내래이터가 등장해 해설과 코러스 역할을 한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소속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연기는 잘 훈련돼 있어 에너지가 넘친다. 4개의 철골 구조를 써, 4명 인물의 이야기를 수시로 전환하는 무대도 변화무쌍하다.


그런데도 공연은 지겹고 난해하게 느껴진다. 관객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무대는 바뀌고, 내래이터의 알쏭달쏭한 말들이 혼란을 부추긴다. 음악은 좋은데 장면 장면과 조화롭게 연결되지 못한다. 후반부에 무대의 벽면이 상하로 갈라지고, 갈라진 틈새에서 배우들이 중창하는 부분은 굳이 그런 무대를 설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어딘지 뮤지컬 ‘그날들’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추상적인 문어체 대사의 남발이다. 심오한 깊이나 곱씹게 하는 철학이 담긴 것도 아닌데, 외국어 문장을 그대로 직역한 듯 어법에도 맞지 않고 우리말스럽지 못한 표현과 문장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 생생한 공연 무대와 어울리지 않게 영어처럼 추상명사나 사물을 주어로 쓴 문장이 많아, 뜻이 즉각 전달되지 못한다. 극 중 작가가 출판사에서 퇴짜 맞는 장면에서 ‘외국에서 오래살다 왔냐’, ‘글에 주어가 없다’는 둥 지적을 받는데, 그 출판사 사장의 말이 공연 전체에 대한 비평을 말하는 듯 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관객이라면 가슴에 와 닿을 메시지도 있지만, 공연시간 100분이 아깝게 느껴질 관객도 있겠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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