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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이해준> 올레길의 진화
길에 문화를 입히는 일은 비단 제주 올레길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렇고 그런 길들이 아니라 고유의 역사와 문화, 삶의 향기가 흐르는 길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걷기가 주는 사색과 성찰의 깊이도 확장할 수 있다.


한국에 걷기 열풍을 몰고온 제주 올레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6년 전인 2007년 9월이었다. 30여년 동안 언론인으로 맹활약했던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뜻있는 사람들과 성산읍의 제1코스를 만든 것이 시초였다. 당시 서 이사장은 숨 막히는 일상을 살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던 상태로, 한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페인으로 떠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올레길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걷기 코스를 하나하나 만들어 지금까지 순환코스를 포함해 26개 코스 422㎞의 길을 개척했다.

올레길이 만들어지면서 제주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단기관광 중심의 여행이 장기 체류관광으로 바뀌었고, 단체관광이 개별여행으로, 명소 중심의 관광이 마을과 재래시장을 돌아보는 여행으로 변화했다. 일회성 관광지가 아니라 계절변화에 따라 다시 찾아 즐기고 힐링하는 곳으로 제주를 바꾸어 놓았다. 이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재래시장 매출이나 숙박업소가 크게 늘고, 버스 이용객이 늘면서 적자로 일관했던 시외버스 터미널이 흑자로 전환했다.

지난주 제주에서 만난 서명숙 이사장은 진정한 자유인의 풍모를 물씬 풍겼다. 언론사 편집국장까지 지냈던 사람이 가질 만한 어떤 형식적이거나 권위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치렁치렁한 상의와 머플러를 걸친 서 이사장은 마치 오랫동안 길을 걷다가 막 돌아온 사람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활력과 열정이 넘치고, 반짝이는 눈동자엔 새로운 영감과 상상력이 충만해 있었다.

서 이사장은 지금까지 6년 동안의 기간이 올레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일은 여기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변과 마을을 잇는 길을 걸으면서 주변 풍광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문화지만, 거기에 스토리를 입히고 다양한 놀거리와 볼거리, 먹거리가 있는 축제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달 31일부터 3일간 진행하는 제주올레 걷기축제는 그 출발점이다. 걷기 여행자들이 ‘걸으멍, 쉴멍, 놀멍, 먹으멍’ 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고 있다. 동서양이 만나는 공연과 노래, 시와 그림, 조각, 전통놀이가 있고, 곳곳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규모로만 보면 제주와 올레길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올해 제주 방문객 1000만명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2배이며, 올레길 방문자 120만명은 산티아고의 연 15만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제 문화의 옷을 입혀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것이다.

길에 문화의 옷을 입히는 일은 비단 제주 올레길만의 과제가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조성돼 있는 수백개의 길에도 문화의 옷을 입힐 필요가 있다. 그렇고 그런 길들이 아니라 고유의 역사와 문화, 삶의 향기가 흐르는 길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걷기가 주는 사색과 성찰, 소통과 치유의 깊이와 폭도 확장할 수 있다. 동시에 지금의 걷기 열풍을 한때의 패션이 아니라 일상으로 녹아들어가도록 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이 길의 진화와 함께 더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의 토대가 될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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