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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 - 한상완> ‘절약의 逆說’에 빠진 한국 경제
부동산시장 ‘구성의 오류’ 해소
8·28대책 등 정부 팔걷었는데
국회선 정쟁으로 관련법안 낮잠
민생법안-정치쟁점 분리접근을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는 것이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성립하지만 전체의 입장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축구장을 들 수 있다. 축구를 보다 잘 관람하기 위해서 한 관중이 일어나면 뒷자리의 관중도 일어난다. 결과적으로는 앉아있는 관중만 손해인 상태가 되어 모두 일어서지만 여전히 앞사람에 가려서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경우다. 경제학 분야의 ‘구성의 오류’로서 유명한 것은 세계 대공황 당시 케인즈가 주창한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다. 경제가 공황 상태에 빠지다 보니 개개인은 절약을 통해 저축을 늘리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그러나 개인 차원의 절약은 경제 전체 차원에서는 소비 감소와 이로 인한 소득 감소를 유발해 결과적으로 저축률은 올라가지만 저축액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핵심요지이다.

사회가 ‘구성의 오류’ 상태에 빠지면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을 더하는 만큼 구성의 오류는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축구장처럼 즐기러 가는 경우도 아니고, 이해가 걸렸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자제력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이 문제라는 것은 모두 다 알면서도 좀처럼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절약의 역설’에 빠져있다.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을 제한 평균소비성향이 추락하고 있다. 저축이 늘어난 만큼 소비가 줄면서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내수 업종의 소득이 줄면서 소비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악순환이다.

가계가 왜 절약에 치중하는지를 보면 상태는 더 심각하다. 바로 부동산시장이 ‘구성의 오류’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주택은 아직도 공급 부족인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믿음 때문에 주택 실수요자들이 전세시장으로만 몰려들어 전세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매매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집을 가진 사람은 집값이 회복을 못하니 절약을 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전세자금을 충당하느라 절약을 한다.

우리 부동산시장은 개개인의 자제력만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다. 모두가 돌아서서 집을 사면 전세가격도 안정되고 집값도 회복된다. 하지만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자기 혼자만 돌아서서 집을 사고 나머지는 꼼짝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낭패가 된다. 이럴 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축구장에서 앉아서 관람하라고 장내 방송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부동산시장의 오류를 해소하는 데 두 팔을 걷어붙인 모습이다. 4ㆍ1 대책 이후 8ㆍ28 대책까지 내놨다. 물론 일각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전세가격 안정대책이 부실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세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답인데, 임대주택이 실제로 시장에 공급될 때까지는 건설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장 전세가격을 잡기 위해서 전세가격에 상한을 씌우는 것은 답이 아니다. 가격 규제가 효력을 발휘한 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전셋값을 올리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를 받게 되면 올라간 전셋값에 이사비용 부담이 추가된다. 그보다는 전세기간을 3년으로 늘리든지, 전세금을 떼이지 않도록 확정일자의 법적 효력을 강화하는 등 세입자 보호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올해 내내 지속되는 정쟁 때문에 부동산 관련 법안들은 낮잠만 자고 있다. 여야 간 정치적인 쟁점까지 다투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미국 의회도 공전을 거듭하는 마당에 그것을 포기하면 정치겠는가. 그러나 민생 법안과 정치 쟁점은 분리해서 접근하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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