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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오시설(?)된 경찰서…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화장실 막힐 정도 노후건물·업무 주차공간 부족 심각…강남·광진서 등 주민반대로 이전계획 무산

치안강화·상권 활성화 vs 집값 하락·교육 악영향…상반된 두 목소리 이 시대 경찰의 슬픈 자화상


좁은 주차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자동차, 낡은 회색 건물과 녹슨 철제 구조물.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는 경찰서의 모습이다. 실제 경찰서의 풍경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속의 강남’에 위치한 강남경찰서의 사정도 마찬가지. 화장실은 변기가 막혀 넘치기 일쑤고, 가건물로 지어진 사무실이 많아 형사 수십명이 한겨울 추위에 떨면서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처럼 낡은 건물과 협소한 주차 문제로 경찰관들의 근무여건이 갈수록 열악해지자, 올해 전국 249개 경찰서 가운데 15곳이 증축이나 재건축 예산을 신청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좀 더 편하고 친근한 이미지의 건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배정된 예산이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이 시작부터 지지부진한 모습을 면치 못하고 있다.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경찰서가 지역민들에게 혐오시설로 인식되면서 지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 재건축 작업이 진행되는 잠깐 동안이라도 경찰서가 들어오는 것을 기피하는 모습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한켠에서는 경찰서가 이전하면서 치안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경찰서가 들어오는 것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이 시대 경찰서는 혐오시설로 기피해야 할 대상일까. 아님 치안의 보루로 유치해야 할 대상일까.


▶노후화된 경찰서 갈 곳 없어 골머리=지난 1976년 지어진 서울 강남경찰서는 시설이 40년 가까이 돼 노후화되자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이 자리에 7층짜리 신축 건물을 짓기로 했다. 신축 경찰서를 짓는 2년 동안에는 현 장소에서 300m가량 떨어진 한국감정원 건물 전층을 빌리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중순 “삼성생명이 강남 지역을 관할하는 강남서의 눈치를 봐 대폭 할인된 가격에 임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감정원 건물에 입주하려던 강남경찰서의 이전 계획이 최근 사실상 백지화됐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서울 광진경찰서도 최근 신축 건물을 짓기로 했다. 1968년 지어진 광진경찰서는 끊임없이 개ㆍ보수 공사를 해왔지만 워낙 건물이 노후한 탓에 민원인의 항의가 계속되고 수시로 비까지 샜다.

이에 신축 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공사기간 중에는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으로 임시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어린이회관 옆 경찰서 가건물 공사는 수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현재 경찰서 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회관 외에는 광진구에서 경찰 300여명과 각종 민원인을 수용할 만한 부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찰서의 열악한 업무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건물 부지 확보에 어려움이 많아서다. 경찰 관계자는 “예산을 확보하더라도 경찰서를 지을 만한 부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고 주민들도 반대하면 이전 계획이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경찰서 생기면 땅값 떨어진다?=강남구 삼성동 소재 부동산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한국감정원 인근 상가들은 대부분 강남경찰서의 임시 이전을 환영했다. 경찰 직원 350여명과 이곳을 드나드는 민원인들로 인해 상권이 살아난다는 것. 한국감정원 인근 한 식당 관계자는 “강남서가 임시 이전해온다는 소식을 듣고 주변 상인들이 기대감을 드러냈는데 무산돼 아쉽다”고 말했다.

경찰서가 주변 땅값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2010년 2월께 서울 용산동의 한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1층으로 용산경찰서의 한 지구대가 이사하자 크게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인근 A 부동산 관계자는 “당시 지구대 이전을 반대한 주민이 많았다. 땅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이유 외에도 심야에 지구대로 취객과 범죄자들이 드나들 것을 걱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B 부동산 관계자는 “경찰서나 지구대가 이전하면서 주변 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여태껏 본 적 없다”며 경찰서 이전시 땅값 하락설을 일축했다.

건축된 지 40년 가까이 지나 노후화가 심각한 강남경찰서 전경. 최근 임시청사 임대가 무산되면서 이전 계획 자체가 사실상 백지화됐다.

▶경찰서는 혐오시설?=경찰서 이전을 강력히 반대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학부모들이다. 수갑을 찬 범죄자 및 각종 민원인들이 수시로 오가는 경찰서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광진구에 사는 학부모 김주영(32ㆍ가명) 씨는 “경찰서가 어린이집 근처로 와 범죄자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순찰차의 경광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주민은 “경광등의 빨강과 파랑색이 교차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불안감이 조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순찰차 경광등은 강력한 전자불빛을 발산해 범죄자를 제압하는 효과가 크다. 한 일선 경찰관은 “순찰차 경광등 불빛만 켜도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하지만 일부 주민은 파출소를 혐오시설로 생각하고, 순찰차 경광등이 너무 밝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했다.

▶경찰서가 집 옆에 있어야 하는 이유=우리가 112에 신고를 하면 몇분 내 경찰이 올 수 있는 것은 지구대와 파출소가 동네 곳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범순찰 활동과 112신고 사건을 처리하는 지구대, 파출소를 통제ㆍ조정ㆍ감독ㆍ협조 하는 곳이 바로 경찰서이다.

경찰서의 존재 이유는 바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근 시민들이 경찰서가 집 옆에 오는 것을 꺼리면서 경찰서가 시내 외곽으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 지구대, 파출소 이전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는 그동안 경찰서 안에서 소란ㆍ난동행위가 빈번히 발생했던 측면이 크다”면서 “순찰하는 경찰이 보기 싫고 집값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편견을 갖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가 주변에 있고 순찰차가 자주 보이면 범죄자들도 범행을 꺼린다”며 “그동안 딱딱했던 경찰서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상식 기자/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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