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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황우여의 ‘포도밭’ vs. 전병헌의 ‘우물’...여야 고사대결
정치인들이 즐기는 몇가지 가운데 하나가 고사(故事)다. 오랜 시간 다져진 전형(stereotype)을 짧게 함축한 까닭에 설득력이 크다. 7일과 8일 이뤄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7일 성경 아가서에 나온 ‘포도원의 시랑(豺狼)’을 인용했다. 작은 여우가 포도원 담에 구멍을 뚫는 것을 방치하면 도둑이 드나들어 밭을 망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수당이 수만 믿고 밀어부친다든지, 소수당이 막무가내로 반대만 하면 국민이 심판할 것이란 뜻이다. 그러면서 당론투표 관행을 없애고, 정당이나 의원이 국회를 태만히 하면 국고보조금과 세비를 깎자는 정치쇄신을 제안했다.

8일 연설에 나선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자성어를 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 멋대로인데다(傲萬不通), 준비도 제대로 안됐고(臨耕掘井), 국민을 속이기까지 한다(羊頭狗肉)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어 박근혜정부가 대선 때 약속을 져버린다면 모든 것을 걸고 투쟁에 나서겠다고 으름장까지 놨다. 타협안이나 새 제안은 전혀 없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국회에 임하는 당의 각오, 국민과의 약속을 밝히는 자리다. 국회는 합의의 공간이다.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한판 붙자’고 덤비는 자리가 아니라, ‘잘 해 보자’고 손을 내미는 자리다. 새로운 제안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너나 없이 조심하자는 ‘포도원의 시랑’이, 너만 잘못했다는 ‘오만불통, 임경굴정, 양두구육’ 보다는 좀 더 적절한 비유인 듯 보인다.

민주당의 국정비판 이해가 간다. 일리도 있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들은 향후 4년, 5년의 국회와 정부의 책임을 새누리당에 맡겼다. 민주당은 전쟁이 난 후에야 무기를 만드는(臨難鑄兵), 또 소가 밭을 짓밟았다고 소를 빼앗은 (蹊田奪牛) 고사도 생각해봄직하다.

정부와 여당이 하는 모든 일이 탐탁치 않다면 화살에 놀란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驚弓之鳥)는 얘기도 되새겨보자. 또 혹시 가진 것이 망치밖에 없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지도.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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