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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공공갈등과 소프트파워 리더십
압축발전 특성 지닌 한국
사회변동 단계별 갈등 중첩
주관적 인식차 따른 공공갈등
진정성 갖고 설득 노력을


어제와 그제 주말 동안 국민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 일 가운데 하나는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전개된 공공 갈등이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반핵단체 등 외부 지원 인원을 합쳐 100여명이 농성에 돌입했고, 경찰 12개 중대 900여 명이 현장 주변에 배치됐다. 자칫 물리적 충돌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인명 피해 등 불상사는 없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이행이 이루어진 지 이제 4반세기를 넘어섰다. 그 사이 여야 간의 두 차례 정권교체를 통해 소위 민주주의의 공고화 검증도 통과하여, 이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성취와는 별개로 27개 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많은 공공갈등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근대 국가에서 공공갈등은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분화와 통합, 합의와 참여, 분권과 집권, 성장과 분배 등의 이원적 속성을 배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상호 절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발전도 추구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만 한다. 한국에서 유난히 공공갈등이 심한 이유는 ‘압축’ 발전 때문이다. 국가형성, 산업화, 민주화, 전지구화라는 거시적 사회변동을 매우 짧은 기간에 이루어냈다. 그러다 보니 각 단계를 거치면서 구성원 간에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가치와 이익의 재분배 과정을 절충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자연히 각 단계별로 불거진 갈등의 원인들이 채 해결되기도 전에 다음 단계에서 발생한 갈등과 뒤섞이고 쌓이게 되었다. 국가형성 과정에서의 이데올로기 갈등, 산업화 과정에서의 노사갈등, 민주화 과정에서의 권력갈등, 전지구화 과정에서의 산업구조 갈등 등이 서로 중첩되면서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져 왔다.

공공갈등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몇 년 전 ‘천성산 터널’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지율 스님의 단식 농성은 자연보호라는 개인 수준의 주관적 가치관에 따른 신념 갈등의 예다. ‘용산참사’를 비롯해 재개발 사업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대개 개인 수준의 객관적 인식에서 발생하는 이익 갈등의 예다. 대북 및 통일 정책과 관련해 나타나는 이른바 ‘남남 갈등’은 구조 수준의 주관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념갈등의 예다. 노사 갈등이나 ‘FTA 체결’을 둘러싼 산업 구조 간의 갈등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객관적 구조 수준의 계급 갈등이다. 더러는 개인 수준의 행위로 인한 갈등이 구조 수준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다. 표를 얻기 위한 개별 정치인들의 충동에 의해 지역감정이 재생산되고 이로 인해 지역갈등이 확대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구조 수준의 주관적인 인식 변화로 인해 개인 수준의 갈등이 야기되는 경우도 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수하다는 전통적인 사회 인식이 바뀌면서 여성 전공의(專攻醫)들이 차별 대우에 저항하면서 빚어진 갈등이 좋은 예다.

객관적인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하드 파워(hard power)에 의존하는 리더십이 유효할 수 있다. 방폐장 입지 선정에서 경제적 보상을 통해 이익갈등을 해결했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주관적인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공공갈등의 경우에는 소프트 파워에 의거하는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당사자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진정성을 바탕으로 설득하는 인내와 노력, 그러기 위해 의사결정 과정에의 폭넓은 참여 기회를 부여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는 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공동의 가치관을 사회화하는 일도 중요하다.

근현대사 해석을 둘러싸고 이른바 ‘편향적’인 이데올로기의 양극단으로 전개되고 있는 국사교과서 갈등이 염려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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