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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구의 리얼한 병든 아버지 연기 압권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무대에서 많은 배우가 아버지 역할을 선뵜지만, 이 만큼 진짜 아버지같은 리얼한 연기는 한동안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속 아버지 배우 신구(77) 얘기다.

신구는 지난 4월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에서 늙은 왕 ‘크레온’을 연기했을 때는 좀 밋밋한 인상을 남겼다. 노련하고 냉혹한 정치가 ‘크레온’의 칼날이 좀 무뎌 보였달까. 대사가 몇마디 되지 않은 예언자 ‘티레시아’ 역의 박정자의 존재감과 대비돼 실망감을 안겼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신구는 정말 뼛속까지 토종 아버지다. ‘홍매’는 50년을 같이 산 그의 아내 이름이며, 나는 극에서 해설을 맡은 둘째 아들이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시골에서 말년을 보낸다. 가족 간 이별의 순간을 담담하게 그린 연극은 부자(父子) 관계 보다 50년을 산 부부 관계가 더 진정성있게 와 닿는다. 성공한 장남만 찾는 아버지에 대한 차남의 미움과 열등감, 푼수 며느리 등 아들 내외의 성격 설정은 다소 진부하다.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속깊은 정을 간직한 뚝배기 부부애도 뻔할 수 있지만, 신구와 손숙의 명연기는 공연 시간 90분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꿔놓았다.

50년 산 부부의 삶이 사실적이다. 아픈 아버지는 누워서 “홍매야~”라고 불러 이불을 개켜 다리를 받쳐달라며 “더 높이, 더 높이, 아니 너무 높아”라고 채근하고,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딱 있어”라며 아내를 귀찮게 한다. 아내는 “이 장단을 누가 맞출꼬?”라고 대꾸하면서도 대소변도 가려주고 곰살맞게 병수발을 다 든다. 부부는 젊은 날 그닥 금실이 좋지도 않았다. 홍매는 “사람 무시하는 거 일등이고 구박하고”라고 떠올리면서도 “저 양반이 간다고 하니 마이(많이) 불쌍하고, 기운이 쪽 빠지고, 그냥 서러버(서럽다)”라며 깊은 속 정과 연민을 드러낸다.

신구의 병자 연기는 실감난다. 구부정하고 쇠약한 몸새, 덜덜 떠는 손발, 힘없이 갈라진 목소리, 흐릿한 눈빛 등으로 관객을 실제 아파 몸져 누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와 마주치게 한다. ‘간성혼수’에 뼈져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옆집 정씨의 멱살을 붙들고 “네가 내쫓지만 않았어도, 몇년은 더 살수 있었다”며 의사 욕을 하는 장면 등 죽음을 앞둔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은 관객의 숨을 꼭 붙든다. 공연 중간 중간, 막이 내린 뒤에도 객석 여기 저기에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극작가 김광탁의 자전적 이야기로,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이다. 정승길, 이호성, 서은경이 함께 출연한다. 10월6일까지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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