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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하는 로맨티스트‘ 펴낸 이무영 감독, ”시대의 악의 책임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시대의 악을 한 사람에게 짐 지우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체제의 달콤함을 누린 자, 방관한 이들, 집단적 의사 표시를 해야 할 때 그렇지 못했던 이들도 쌀 한 톨 같은 책임은 있지요. 과거를 뉘우치고 반성하는게 자신이 산 세상에 대한 책임과 도리라고 생각해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본투킬’등의 각본을 쓰고, ‘휴머니스트' 등 여러 영화를 연출한 이무영(50) 영화감독이 때마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완납한 시점에 5공시절 코미디같은 얘기를 담은 소설 ‘각하는 로맨티스트'(휴먼앤북스)를 펴냈다.

5공 시절, 육사와 해사 생도간에 벌어진 축구시합에서 영부인의 이름을 잘못 호명한 앵커가 보안사에 끌려간 실화를 통해 야만의 시대를 그려낸 블랙코미디다.


‘땡전’ 뉴스를 하는게 부끄럽긴 해도 시대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던 주인공이 말실수로 시대의 부조리를 직접 경험하며 변화하는 얘기를 통해 이 감독은 ’자기 반성‘의 의미를 새롭게 끄집어낸다. 시대가 악했다면 우리는 조금씩 그 악을 보탰다는 것이다.

보안사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는 살벌한 방송사, 인간다움이 바닥나는 생생한 고문현장이 그려지지만 소설은 오히려 우습고 가볍다. 각하와 영부인의 낯간지러운 사랑 투정때문이다. 각하는 말 한마디로 사람 목숨을 날파리 처럼 좌지우지 할 수 있지만 오직 영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꼬리를 흔드는 순정파 로맨티스트로 묘사된다. 둘이 손잡고 TV 드라마를 보며 깔깔대고 앵커의 말실수에 대해서도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감독은 “소설을 쓰는 게 개인적으로 용기가 필요했다”고 했다. “한 사람을 공격하거나 비아냥 거릴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객관적인 위치에 올려놓고 바라보자는 마음이었죠. 5공때 벌어진 불편한 일들이 이제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 감독은 5.18광주의 발포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얘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믹한 소설 구석구석엔 여러 암시가 깔려 있다.

이 감독은 7,8년전 한 방송인으로부터 말실수 이야기를 들은 뒤, 곧 바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소설은 훨씬 뒤인 지난해 완성했다. 영화라면 역시 코미디로 만들 참이다. 사실 엄혹한 시절도 지나고 나면 그런 코미디가 없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았잖아요. 어린 중학생이 교복 후크를 잠그지 않고 청와대 앞을 지나갔다가 사복경찰의 솥뚜겅 같은 손에 나가 떨어진 야만의 시대였죠.“

이 감독은 독재를 패션 쯤으로 아는 젊은 세대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나의 발전‘이라는 테마가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그 외의 일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잘못된 걸 말하지 않으면 그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죠.“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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