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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립 아흘로가 얘기하는 한국 초연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Parsifal)’이 다음달 한국에서 초연된다. 베르디, 푸치니 등 이탈리아 작곡가의 오페라는 자주 무대에 올라 한국 관객과 친근하지만, 바그너는 공경하되 가깝지만은 않은 존재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막대한 출연진, 주제의 심오함 때문에 오페라 연출자, 음악감독, 제작자에게 바그너는 넘어야할 봉우리로 여겨진다. 그 중에서 ‘파르지팔’은 최고봉이다.

국립오페라단에게 바그너는 여러 모로 각별하다. 국립오페라단은 1974년 ‘방황하는 네달란드인’을 초연하며 국내에 처음 바그너 작품을 알렸고, 이후 ‘로엔그린’(1976년) ‘탄호이저’(1979년) 등을 과감하게 선뵜다. ‘파르지팔’ 초연은 오페라단의 도약을 가늠하는 시험 무대다. 오페라단은 내년부터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4년에 걸쳐 매년 1편씩 선뵈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2008년 독일 바이로이트극장이 제작한 ‘파르지팔’이 한국 초연을 준비하던 중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화재로 인해 무산된 적이 있어, 이번 공연은 당시 아쉬워했던 바그너 팬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제작진, 출연진 모두 바그너 전문가들이뭉쳤다. 매해 바이로이트축제 무대에 서는 베이스 연광철, 독일 슈투트가르트극장 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를 역임한 지휘자 로타 차그로섹, 바이로이트축제에서 6년간 ‘탄호이저’를 연출한 연출가 필립 아흘로 등이다. 10일 필립 아흘로(65) 연출가를 따로 만나 한국 초연 ‘파르지팔’에 대한 얘기를 더 들어봤다.

▶이미지가 강렬한 한국 버전 ‘파르지팔’=아흘로 감독은 먼저 “한국 관객의 기억 속에 ‘파르지팔’의 마크(기념)가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 아흘로 감독은 이번에 무대, 조명, 연출을 모두 맡는다. 그는 “기존 연출은 세가지 정도다. 바그너 시대와 (원작 배경인)중세를 그대로 표현한 보수적 연출, 원작을 완전히 해체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연출, 마지막으로 미학적이고 낭만적인 연출 등이다”면서 “‘파르지팔’을 처음 접한 관객 입장에선 추한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걸 보러 오기 때문에, 나는 낭만적인 감정의 신(장면)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보면서 관객이 철학적 시각을 갖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를 두고 음악, 철학, 문학, 회화 등이 망라된 ‘종합예술(Gesantgunstwerk)’이란 말을 처음 만든 게 바그너”라고 덧붙였다.
 
‘탄호이저’를 통해 이미지 연출에 강점을 드러낸 그는 이번에 ‘빙하’와 ‘나무’ 오브제를 쓴다. 몰락해가는 기사단을 은유하고 상징하는 효과다. 그는 “내 작품에선 이미지가 50%를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조명, 무대까지 신경쓴다. ‘변화하는 나무’와 ‘빙하’는 기존 작품에선 찾을 수 없는 이미지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바그너가 생전 자신의 공연은 바이로이트에서만 열라고 해 만들어진 독일 바이로이트축제에는 매년 여름 세계 ‘바그너리안(바그너 추종자)’이 몰려든다. 그 무대에서 1996년 데뷔한 연광철은 세계적인 바그너 베이스로서 명성을 굳혔다. 사진은 ‘파르지팔’ 구르네만즈를 연기하는 연광철. [사진제공 =국립오페라단]

▶성(性)ㆍ인종 차별, 나치주의는 없다 =‘파르지팔’은 성배를 섬기는 중세 기사단이, 마법사에 의해 상처 입은 왕을 치료하기 위해 예언자의 말에 따라 ‘순수한 바보’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바보의 모습이던 ‘파르지팔’이 방황 끝에 구원자가 되어 왕을 낫게 하고 기사단의 왕좌를 잇는 내용이다. 19세기의 종교관 철학, 심리 등이 녹아 있는데, 특히 바그너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바그너 작품에는 흔히 비현실적 여성이 등장한다. 고귀한 숭배의 대상 또는 타락한 요녀 둘 중 하나다. 또 바그너는 생전 반유대주의자였고, 히틀러가 나치즘 선동에 바그너 음악을써서, 바그너는 친 나치라는 오명을 썼다. 아흘로 감독은 “이번 작품에는 종교(기독교) 의식이 나오지만, 형식만 올릴 뿐 종교적 의미를 담지 않았다. 또 (성경 속 창세기)‘여자가 원죄’라는 인식은 잘못됐기 때문에 여성 역할 ‘쿤드리’(원작에선 유대인)가 그냥 단순하게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성차별적 작품이 됐을 것이다”며 현대 눈높이에 맞췄음을 설명했다. 그는 또 “바이로이트에서 한 마지막 ‘파르지팔’을 보면 나치 친위대가 나오는데 웃기다고 생각한다. 독재자가 바그너를 좋아한 취향이 바그너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며 정치, 사회적 배경을 떠나 예술 자체만으로 볼 것을 당부했다.

필립 아흘로 - “베르디, 푸치니 오페라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라면, 바그너 오페라는 배에서부터 이해해하는 것이죠.” 죄, 연민, 구원, 고통, 사회 속의 여성 등 철학적이면서 신비로운 바그너 오페라가 지닌 특별한 점을 연출가 아흘로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진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파르지팔’ 아닌 ‘구르네만즈’ =‘파르지팔’을 찾아내는 기사단의 늙은 기사 ‘구르네만즈’ 역의 연광철에 대해선 극찬했다. 아흘로 감독은 “연광철과 같이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 온 것이다”면서 “바그너가 생각한‘구르네만즈’에 완벽한 목소리를 갖고 있고, 딕테이션(발음)은 독일 가수보다 확실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 오페라는 ‘파르지팔’이 아닌 ‘구르네만즈’로 불려야 한다. 파르지팔은 20분 밖에 노래하지 않지만, 구르네만즈는 전체의 50%인 2시간 이상을 노래한다”고 말했다.

파르지팔 역은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 쿤드리 역은 메조 소프라노 이본 네프가 맡았다.

‘파르지팔’은 10월 1일, 3일, 5일에 오후4시에 단 3회만 공연한다. 1막(105분) 이후 1시간 쉰 뒤 2막(60분), 3막(85분) 등 공연시간만 4시간이 넘는다. 예술의전당은 1막 뒤 휴식시간에 별도 식사를 판매할 예정이다. (02)586-5284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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