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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사의한 인물 바틀비
자본주의의 허점과 한계를 날카롭게 해부해
[북데일리] 쉽게 잊을 수 없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있다.  ‘바틀비’도 그 중 하나다.

<필경사 바틀비>(보물창고. 2013)는 <모비 딕>의 저자이며 미국 낭만주의 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허먼 멘빌의 소설이다. 더불어 이 작품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난해한 작품이자 실존주의를 드러내는 부조리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필경사scrivener’는 복사기가 없던 시절에 서류를 베껴 쓰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다. 화자인 ‘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 가(街)에서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바빠져 세 명의 직원 외에 새로운 필경사를 한 명 채용하게 된다.

“광고를 냈고 곧 사람이 찾아왔다. 더운 날씨 탓에 열어 두었던 사무실 문간에 한 젊은이 하나가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창백할 정도의 단정함, 애처로울 정도의 기품 그리고 치유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고독함……! 바틀비였다.” (p.20)

바틀비는 초반에 어마어마한 양의 필사를 했다. 오랫동안 쓰는 일에 굶주렸던 사람처럼 서류를 먹어 치우듯 필사를 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3일째가 되는 날, 황당무계한 상황이 벌어진다. 바틀비가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한다.’는 이유로 ‘나’의 지시를 거절한 것.

“나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작은 일을 마무리하다가 바틀비를 불렀다. 나는 당연히 바틀비가 즉시 내 곁으로 올 것이라 여겨 고개를 숙인 채 내 책상에 놓인 원본을 들여다보며 사본을 쥔 오른손을 앞으로 뻗은 상태였다. 그가 빨리 이 서류를 받아 일을 시작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심지어 나는 그런 상태로 바틀비를 기다리며 그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틀비가 자신의 구석 자리 은둔처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특유의 침착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경악했을지 그대들은 상상이 가는가?

나는 너무나 놀라 어안이 벙벙하였다. 일단 내가 잘못 들었거나 바틀비가 나의 말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문장으로 다시 한 번 부탁을 했다. 그런데 나만큼이나 정확한 어조로 그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

“하지 않는 쪽을 선호……?”

나는 그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고는 몹시 흥분한 채 자리에서 일어서서 사무실을 가로질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니, 자네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여기 이 서류를 비교해 달란 말이네! 어서 받게”

나는 서류를 그에게 들이밀었다.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합니다.”

그가 말했다.“ (p.22~p.23)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바틀비가 선호하지 않겠다며 거절하는 일은 점점 늘어간다. 심부름에서부터 본업인 필사 일까지 거부하고 급기야는 사무실에서 나가 달라는 요구까지 거절한다. 그렇게 바틀비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에 그저 머무르게 된다.

"다음 날 나는 바틀비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공상에 잠겨 창가에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왜 필사를 하지 않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그는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대답했다.

“왜? 이번에는 왜? 다음에는 대체 뭔가? 하다하다 이제는 필사를 안 하겠다니!”

나는 고함을 치고야 말았다.

“안 합니다.”

“그래 이유는 뭔가?”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그가 무심히 대답했다.

나는 그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이 어쩐지 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일하기 시작한 뒤 처음 몇 주 동안 어두운 창가 자리에서 정신일도 하여 필사했던 것이 일시적으로 그의 시력을 상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p.48~p.49)

나는 바틀비를 이해하고 도우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바틀비를 내버려 둔 채 사무실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후 감옥에 수감된 바틀비를 찾아가 그의 임종을 지켜보게 된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허점과 한계를 날카롭게 해부해 192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던 중산층의 몰락과 경제 대공황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틀비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또한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는 그의 태도에 기이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어 그의 상황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릿해 오기도 한다. 바틀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인물이다.

끝으로,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는 'I would prefer not to'를 번역한 것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이미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번역, 출간하였다. 각각 그 뉘앙스에 조금씩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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