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취재X파일]“맛 아닌 약으로 먹죠”… ‘회장님 수박’으로 본 초고가 추석선물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식음료ㆍ유통업체가 각종 선물세트를 앞다퉈 내놓는 시기이기에 백화점을 한 번 훑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상품들이 나왔는지, 올해 트렌드는 어떤지 알아보려는 요량이었죠. 애초 가벼운 마음으로 백화점을 돌기로 했는데. 초장부터 생각을 고쳐먹게 하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식품관에서 입니다.

멀리서 한 눈에 봐도 일반 수박보다 3배 가량 커 보이는 ‘물체’였습니다. ‘물체’라고 표현한 건 수박인지, 호박인지 단번에 구분하기 힘든 외양 때문이었습니다. 수박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검은 줄이 과피에 없었습니다.

매대 가까이 가보니 ‘무등산 수박’이라고 써 있어 수박인 줄 알았죠. 가격은 무려 35만원. 깜짝 놀라 수박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점원이 다가왔습니다. 기자가 “진짜 35만원이냐, 이게 이 백화점엔 몇 통이나 있나”라고 묻자 그 점원은 “한 통 더 있다. 48만원짜리도 있는데 주문하면 구매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 수박값을 대략 2만5000원이라고 봤을 때 20배 가까이 비싼 수박이 유통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이거 먹어볼 수 있나요” 그러자 점원은 다소 어이없어 하더니 “이건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약으로 먹는 거예요. 주로 회장님들이 삽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아, 회장님…’ 일반인이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상품을 사는 인물로 통하는, 또는 경제력이 부족한 일반인에게 구매욕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마케팅 수법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 ‘회장님’을 수박을 앞에 두고 들은 것이죠.

‘회장님 수박’을 만난 김에 초고가 선물이 뭐가 있는지, 가격은 적정한지를 한 번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위스키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노신사가 와인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대충봐도 중소기업 ‘사장님’은 돼 보였는데 점원과 대화를 엿들으니 그리 비싼 가격의 와인을 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이 기자에게 다가와 어떤 와인을 찾는지 묻더군요. 여전히 옆에 있는 중소기업 ‘사장님’ 들으라는 식으로 “제일 비싼 와인이 얼마죠”라고 했습니다. 1200만원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워낙 고가 와인이 많은 세상이라 그러려니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질문을 던졌죠.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해서 저가 와인이 많이 나간다고 신문에서 봤는데 진짜 그런가요”라고 하니 그 점원은 “대충 그렇죠. 3만원~5만원대 제품을 많이 찾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1200만원 짜리 와인은 누가 사서 어떤 사람한테 선물을 하는 걸까요. 점원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1200만원짜리 와인을 선물한다면 그건 선물이 아니고 뇌물이죠. 그런 와인은 선물용이 아니고 대체로 구매자 본인이 드시는 용도예요”라고 했습니다.




1200만원짜리 와인 얘길 들었지만 웬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주류코너에서 나왔다가 다시 둘러봤습니다. 진열대 맨 위에 2700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 제품을 발견했습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로 유명한 ‘글렌피딕 50년산’이었습니다. 이 위스키를 수입ㆍ판매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측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50년산이 국내에 몇 병이나 있고 가격은 얼마인지 알고 싶어서였죠. 국내엔 총 3병이 들어왔고, 모두 신세계백화점에 내놓았다고 하더군요. 2병은 이미 팔렸고, 한 병 남았다고도 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글렌피딕 50년산’은 희귀 아이템이기 때문에 마시려고 구입하는 것도 있지만 재테크 차원에서 사기도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또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비싼 물건 조금 접했다고 백화점 식품관이 점점 딴 세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올리브 오일 값은 상식을 깨는 수준이었습니다. 스페인산 ‘올드파수스’ 올리브 오일이 무려 45만원에 진열돼 있었던 것이죠. 100㎖당 9만원인 셈입니다. 바로 앞 매대에 나와 있는, 나름 프리미엄이라고 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폰타나의 오일세트(올리브 오일 포함)의 3만5200원은 댈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가호호 없는 집이 없을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전통 장류도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선물세트로 포장되면 가격이 2배 이상 뛰더군요. 농㈜고려전통식품이 내놓은 ‘기순도 전통장’의 고추장ㆍ된장ㆍ간장 등 3종 세트는 10만원이었습니다. 단품으로 이들 3종류의 장을 구입하면 3만8000원이면 됐지만 옹기에 담았다는 이유로 값이 올라간 겁니다. 한 백화점의 매대 직원은 “선물용이니 옹기에 담은 걸 사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어렵다지만 고소득층의 고가 선물 수요는 줄어들지 않아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상식을 확 깨는 가격의 술, 수박, 고추장, 한우를 사는 ‘회장님’들은 언제나 행복하신지 궁금해하며 백화점을 나왔습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