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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가을에 어울리는 윤대녕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피할 수 없는 운명의 바람이 불고 있어 아프고, 하릴없이 그 바람 맞으며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윤대녕의 소설집 ‘대설주의보’의 인물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의 말대로 사는 자리에 기둥을 박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윤대녕의 소설들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마음 한 자락이 비어 그 허전함을 다잡지 못하고 떠돌거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소리없이 앓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설주의보’ 이후 3년 반 만에 내놓은 소설집 ‘도자기박물관’(문학동네)의 인물들 역시 생생한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스스로 치유해가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처 없는, 아련한 아픔과는 다르다. 고통을 인정하고 생의 요소로 받아들이며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겨우 포착된다.

일곱 편의 소설 가운데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는 우연히 병원 중환자실에서, 대학 때 동아리에서 마음을 준, 작가가 된 선배의 환자를 돌보는 모습을 본 후 그에게 편지를 쓰는 이야기다. 수유리 계곡으로 MT를 간 날, 그와 하룻밤을 지내지만 이튿날 새벽 그는 도둑처럼 떠난다. 편지에 화자는 자신의 결혼생활과 아기의 사산, 남편의 폭력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후 이제 ‘책 읽어주는 방’을 운영하며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발견해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쓰는 행위를 통해 화자는 스스로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셈이다.


표제작 ‘도자기 박물관’은 트럭행상으로 평생을 살아온, 도자기에 미친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묵공장에서 만난 영숙과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나섰다가 트럭행상의 조수 노릇을 하게 돼 영 그 길로 들어선 인물이다. 남도길에서 우연히 만난 청자 접시에 마음을 빼앗긴 후 그는 도자기만 보면 혼이 나간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꿈은 영숙에겐 이미 깨진 접시와 같다. 한 번은 허전한 속을 달래려 행상길에 따라나섰다가 그가 주막집 백자 달항아리에 빠져 흥정하는 사이, 겁탈을 당하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아내를 잃은 그는 빠르게 늙어간다. 가마에 불이 들어가는 날이면 그는 불 앞에 앉아 생을 돌아보며 자문자답한다. “지금도 몸과 마음이 춥고 아프오?” “괜찮소이다. 몸이고 마음이고 이제 한껏 놓여난 듯하외다.”(…) “꿈이라도 꾸지 않았으면, 이때껏 연명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겠소?”

소설 ‘반달’의 주인공은 지나온 청춘의 허기와 뜨거움의 한복판에서 ‘사랑’이란 말로 불러도 좋을지 모를 한 남자와의 관계를 연인에게 들려주게 된다. 새우잡이 동력선 안에서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한 별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하늘을 보며 맹렬하게 타올랐던 불가해한 순간의 수수께끼를 안고 사는 나는 그를 잊지 못하는 상태로 몇 년간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별들의 생성과 소멸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 파괴되면서 동시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윤대녕은 이 일곱 번째 소설집을 내며 ‘작가의 말’에서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러한 시간의 집적이자, 흔적이 되겠다”고 썼다.

이번 소설집에서 두드러지는 회고담 스타일은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작가의 인생의 때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물과 대상과의 거리가 생긴 만큼, 이전의 인물들이 관계에서 보여주는 아슬아슬함이나 숨참이 잦아들었다. 오해와 얄궂은 운명에 의해 엇갈리는 거북스러운 답답함도 줄었다. 말간 글로 소설마다 한 컷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그 특유의 회화적 아름다움은 여전히 이번 소설에서도 빛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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