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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인문학이 필요한 사회/이해준 문화부장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더 자유로워졌습니까? 그래서 더 행복해지고, 더 유연해지고, 가족이나 이웃들과 더 잘 지내게 되었습니까?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더 생기발랄해지고 상상력과 창의성도 더불어 늘어났습니까?”

인문학 관련 강연과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지난 5월 발간한 인문학 입문서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에 최근 몇 년 동안 조용히 분 인문학 열기의 근본 원인이 담겨 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기존의 삶의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지난 30여년 사이에 경제가 급성장하고, 생활이 윤택해지고, 한국의 국제적 지위와 국격이 몰라볼 정도로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느끼는 행복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범죄와 자살과 같은 사회문제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의 패턴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가 일어난 것이다. 이전에는 먹고 살기 바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물질적 성취보다 정신적ㆍ문화적 욕구가 생겨난 것도 그 배경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때 인문학이 던진 화두는,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집단논리에 용해돼 자기 고유의 색깔을 상실한 개인을 욕망의 주체로 끌어내는 일이었다. 개인이 집단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희생자가 아니라, 독립적 인격과 욕망을 지닌 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하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이었다. 최 교수는 ‘인격적 기품이나 창의적 상상력은 독립적 주체의 파생상품’이라며 집단의식에 매몰된 개인을 살리는 것이 인문학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권위주의의 퇴조와 함께 인문학이 각광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전개되고 있는 국내외 상황을 보면 모처럼 싹을 틔우던 인문학적 상상력이 위축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응해 국내에서도 강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바람이 불면서 개인의 사고가 위축됐다. 국내적으로는 북한의 전쟁 위협에서 시작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NLL 포기 논란, 최근에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종북발언 및 내란음모 사건까지 정신없이 이어지며 반공이념의 홍수 속에 집단적 사고를 강요당하는 듯한 모습이다.

국제경쟁이 치열하고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가의 근본을 세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합리적 이의제기가 봉쇄되고 이성적 논의보다 내편이냐 네편이냐, 아군이냐 적군이냐와 같은 편가르기가 우선한다면 성숙한 사회라고 하기 어렵다. 문제의 근원에 대한 성찰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파상적 이념공세와 함께 낙인찍기와 집단적 사상검증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독립적 개인이 다시 집단에 용해되면서 냉전시대와 같은 정신적 황폐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편가르기에 앞서 차이와 다름을 인식하고 그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서로 다른 개인이 상호소통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생각의 차이가 인격의 말살로 이어진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독립적 개인의 창조적 상상력도 위축될 것이다. 지금처럼 엄혹한 상황이야 말로 이에 대한 성찰, 창의적인 사고와 발상, 즉 인문학이 필요한 때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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