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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흔다섯 숨지기까지 ‘내면에 소리’에 집중했던 최욱경,미공개작 한자리에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커다란 눈망울의 여성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관골(광대뼈)과 입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얼굴은 강직해 보인다. 허나 눈만은 사슴처럼 촉촉하다. 골똘히 상념에 빠진 모습에서 외로움이 물씬 읽혀진다. 요절한 한국의 추상화가 최욱경(1940~1985)이 미국에 체류하던 시절 그린 자화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최욱경은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서양화 전공)를 나와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실력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아가며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비롯해 당시 유행하던 화풍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독자적인 실험과 모색을 거듭하며 ‘한국적 색채 추상’의 길을 걸어갔다. 학업을 마친 뒤 위스콘신주립대 강사 등을 역임한 최욱경은 1979년 고국으로 돌아와 영남대를 거쳐 덕성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요절화가 최욱경이 1969년에 그린 자화상. 종이에 콩테. 63.5x48.5cm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푸른 종이에 콩테로 그린 최욱경의 이 자화상에선 낯선 이국 땅에서 동양인으로, 또 여성으로서 살아가며 느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다. 마흔다섯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던 최욱경의 작품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최욱경 회고전에서 만날 수 있다. 가나아트갤러리(대표 이옥경)는 불꽃같은 열정으로 작업했던 추상 화가 최욱경의 미공개 드로잉 100여점 등을 공개하는 작품전을 9월 5일부터 25일까지 개최한다.

최욱경의 드로잉은 색채추상의 근간이자, 작가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는 누드 등을 그린 50여 점의 인체 드로잉을 비롯해 인물 드로잉, 자화상, 콜라주, 흑백풍경 흑백추상 등이 포함됐다. 자유로운 필치의 최욱경의 사실적인 인체 드로잉에선 윌렘 드쿠닝 (Willem de Kooning1904-1997)의 영향이 엿보인다. 또 콜라주와 텍스트 등이 다양하게 삽입된 일련의 작품들은 앤디 워홀 등이 주도했던 팝아트 등 당대 예술사조와 시사적 문제에 관한 작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반면에 먹으로 그린 그림이나 붓글씨가 곁들여진 작품들에선 한국적인 것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흔적을 발견하게 한다. 명확한 장르 구분 없이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드로잉 작업은 하나의 완결된 작업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지아 오키프, 윌렘 드쿠닝 등의 영향을 받은 최욱경은 살아움직이는 듯한 강렬한 색채로 꽃봉오리, 여성 인체 등을 그려냄으로써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던 여성성의 일면을 격정적으로 드러냈다. 분출하는 듯한 생명력과 환희, 사랑을 아름답고도 치열하게 담아낸 그의 작품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회화와 자주 비견되곤 한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에는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참과 거짓 등 대립되는 양극의 두 세계를 넘나들며 번뇌해온 작가의 심상이 오롯이 배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yrlee@heraldcorp.com

최욱경 제목미상. 1966, Oil on canvas, 185x121cm(부분)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최욱경 Faces, 1968, Conte on paper, 92x107.5cm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최욱경 Glory, Acrylic, ink and paper collage on paper, 46x61cm [사진제공=가나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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