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이제 더이상 극장이 아니다. 단순히 영화 한 편 보려고 극장을 찾던 시대는 지났다. 극장이 빠르게 진화하며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확확 바꿔놓고 있다. 영화 감상을 넘어, 영화관을 찾는 것 자체가 문화체험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요즘은 극장에서 비즈니스도 하고, 공연도 보고, 전시도 본다. 뿐만인가. 심지어 학교수업이며 세미나도 한다. 물론 쇼핑과 외식도 가능하고, 어린 자녀와 책도 읽을 수 있다. 대도시 멀티플렉스는 이처럼 문화플랫폼이자 콘텐츠 발신지로 빠르게 변모 중이다. 때마침 ‘한국영화 누적관객 1억명 돌파’를 앞두는 등 영화 관람 열기가 뜨거운 시점이어서 멀티플렉스의 진화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영상ㆍ사운드ㆍ좌석 등 관람시설은 물론 차별화된 콘텐츠, 멋지고 매혹적인 공간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요즘 극장가를 돌아봤다.

▶‘컬처플렉스’라는 새 패러다임=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나홀로족’ 김영철(35ㆍ마포구 아현동) 씨는 얼마전부터 극장 나들이가 부쩍 잦아졌다. 간편한 차림으로 극장을 찾아 아이패드를 갖고 놀거나 책을 읽는다.

김 씨는 “예전엔 단지 영화볼 때만 왔다. 그런데 지난 6월 CGV신촌아트레온으로 바뀐 뒤로는 작업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이렇게 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멍’때리며 논다. 이 기다란 ‘바(Bar)시트’, 참 멋지지 않느냐? 지하 3층의 씨네마라운지도 종종 들러 비치된 책이며 잡지를 읽는다. 물론 보고싶은 영화가 있으면 관람도 한다. 극장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참 놀랍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극장은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문화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은 건물 2~3층 전면부를 뻥 뚫어 높이 15.5m에 이르는 휴식공간을 조성한 CGV신촌아트레온의 메인 로비.                   [사진제공=CGV] ①메가박스 일산 백석점 내 어린이도서관 ‘키즈박스’ ②롯데시네마의 로봇도우미 ‘시로미’ ③독특한 유니폼을 입은 CGV신촌아트레온의 직원 ‘미소지기’ ④CGV여의도 씨네마 스트리트에 아티스트들이 그려넣은 월페이퍼 작품

실제로 CGV신촌아트레온은 요즘 신촌 일대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CGV가 이곳을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후 ‘젊은이의 새로운 아지트’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북(北)역을 모티브로 고풍스러운 기차 플랫폼으로 꾸며진 도입부며, 천장 높이가 15.5m에 달해 가슴까지 뻥 뚫리게 하는 로비 등은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 극장은 지하에 북카페를 겸한 씨네마라운지도 조성했다. 작은 콘서트나 전시회, 시네마토크도 열리는 공간이다. 이벤트가 없을 때는 고객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가죽소파를 곳곳에 배치했다. 또 ‘작업중’이라는 콘셉트 아래 주철 구조물, 컨테이너, 공구, 작업모를 설치작업처럼 배치한 특별관도 독특하다. 젊고 참신한 극장이다.

이곳의 공간디자인을 총괄한 건축가 최시영(AXIS디자인 대표) 씨는 “9개의 상영관에 각기 다른 특색을 부여했고, ‘20대의 메카’인 신촌답게 문화놀이터로 디자인했다“며 “캐나다에서 4년간 체류할 때도 영화관을 즐겨 찾았는데 한국의 영화관이야말로 최고다. 시설도 대단하지만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놀랍다. 게다가 요즘은 한국영화가 어느 때보다 르네상스를 맞고 있어 극장은 이제 대단한 파워를 지닌 곳이 됐다. 그 파워의 의미를 되새기고, 더욱 긍정적으로 끌고가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멀티플렉스의 변신은 2011년 CGV청담씨네시티가 도화선이 됐다. 영화 관람과 함께 외식, 쇼핑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해 이슈를 만든 것.

CGV청담씨네시티는 입구에 들어서면 꽃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매표소는 8층에 있다. 그야말로 역발상이다. 예전엔 고객이 극장에 와서 매표를 했지만, 요즘엔 대다수가 인터넷 또는 모바일로 예매하기에 가능했다.

대신 1층에는 커피, 빵, 화덕피자를 파는 베이커리와 꽃집을 들였다. 카페와 비빔밥을 파는 레스토랑도 자리를 잡았다. 2~4층에는 스테이크레스토랑, 엠넷의 오픈스튜디오, 패션숍이 있고 상영관은 5층부터 13층까지다. 상영관마다 개성이 다르고, 요금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CGV여의도는 이와는 또 다르다. ‘한국의 월스트리트’인 여의도답게 ‘씨네마스트리트’라는 콘셉트 아래 런던의 소호거리처럼 꾸몄다. 흥미로운 점은 입구에서 상영관까지 동네마을처럼 조성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이리저리 거닐다가 마음에 드는 영화를 쇼핑하거나, ‘씨네샵’ 등 재밌는 공간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CGV는 이 밖에 인근 대학 미술학도 작품을 극장에 상설전시하거나, 어린이를 위한 환상적인 영상브리지 등도 만들었다 .

▶좀더 특별한 콘텐츠…극장에도 큐레이터가 있다=이제 극장에도 큐레이터가 상주한다. 그들은 예술영화주간, 시네마토크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관객과 대담도 갖는다. ‘공감 재미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메가박스는 오페라, 콘서트, 발레영상 상영을 정례화하고 있다. 또 영화관 내에 어린이도서관을 조성하는가 하면, 도심 건물에서 캠핑하면서 영화를 보는 야외시네마 등 상식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작년에 이어 라이브중계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상영관을 배로 늘렸음에도 조기 매진돼 관계자조차 놀랐다. 뉴욕 메트오페라 영상 또한 인기가 높다. 9월부터는 발레 공연실황도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작년 말 개관한 메가박스 백석점에 조성한 어린이도서관 역시 호응이 높다. ‘Happy Memories’를 표방하는 롯데시네마 또한 영화티켓 발권 기능과 보안 기능을 갖춘 깜찍한 도우미 로봇 ‘New 시로미’를 선보이는 등 다각적인 실험을 거듭 중이다.

비록 멀티플렉스는 외국서 들여온 시스템이지만, 이제 한국의 멀티플렉스는 지구상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경쟁력으로 우리는 ‘극장 수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