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시계, 아름답고 오묘한 장치
<시계와 문명>...과학혁명의 견인차 역할도
“초창기 기계식 시계는 매우 부정확했기 때문에 해시계나 물시계에 근거하여 시침을 앞뒤로 돌려 시간을 정정해야 했다.”

[북데일리] 시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우리는 이 글에서 지금의 정교한 시계가 나오기까지의 결코 간단치 않았던 시계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숟가락 크기의 손목시계 하나에는 정확한 시간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숨어 있는 셈이다. 과연 시계는 어떻게 탄생되고 발전해 왔을까. <시계와 문명>(2013. 미지북스)는 그 답을 주는 책이다.

책에는 시계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먼저 유럽에서 최초로 시계를 제작했던 이는 금속을 다루는 대포 장인이었다. 그 이유를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계식 시계와 대포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것이 전적으로 우연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수적으로 또 질적으로, 금속 직공의 괄목할 만한 성장의 소산이었으며 뒤에 가서 보겠지만 초창기 시계 제작자 다수가 또한 대포 제작자였다. 대포와 기계식 시계의 동시 출현은 유럽식 발전의 특징을 증언하는 것이면서 또한 앞으로 전개될 양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56쪽)

초기의 기계식 시계는 공공용으로 쓰였다. 우리는 문학작품에서 종소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본다. 종소리는 유럽인의 일상과 함께 했다. 이 중요한 종소리의 기능은 필연적으로 정확한 시계와 만남을 예고했다.

초창기 거대한 공공 시계였던 기계식 시계는 15세기에 태엽이 동력으로 등장하여 크기가 작아지면서 가내용 시계, 회중시계로 발전했다. 16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의 신흥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때부터 시계 장인은 대포 장인보다는 보석 세공인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였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시계 제조업 중심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독일이 선두 주자를 달려 15세기 말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가 시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부상했지만, 30년 전쟁의 참화로 산업의 중심추가 영국(런던)과 스위스(제네바)로 옮겨갔다.

17세기 전반기에는 시계 제작의 전문화가 이루어져, 시계 장인들은 탈진기, 도르래, 태엽, 외장 등 각각의 부품을 제조하는 수공업자들로 분화되었다. 이러한 전문화는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교환 가능한 부품으로 구성되고 전문화된 직공의 손을 거친 대량 생산 시계는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계는 시간을 측정하는 정밀 기구로서 특히 과학 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우리는 시계가 우주의 오묘함을 가리키는 은유로 많이 쓰임을 알 수 있다. 케플러는 “우주는 신성한 존재와 유사한 것이 아니라 시계와 비슷하다”고 말했고 로버트 보일은 “우주는 거대한 시계태엽 장치”라고 썼다.

우리는 수시로 시계를 보지만 더 이상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편하고 기막힌 발명품인가. 시계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는 시간을 포획했다. 이 놀라움은 지금도 쓰고 있는 하나의 단어에 담겨있다. 바로 자명종(自鳴鐘)이다. 스스로 울리는 종! 이 단어에는 놀라운 시계의 찬탄이 숨겨있다. 시계가 유입되었을 당시에 중국은 황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스스로 울리는 이 자명종에 열광했다.

현대의 시계는 오차가 극히 적다. 이 말은 그만큼 지난했던 시계의 역사를 웅변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장치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북데일리 제공]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