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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국내 첫 향 문화책 낸 능혜 스님, “입으로만 먹는게 아니라 코로도 먹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지나긴 날 한가로이 심자향을 사르나니/목계는 어디를 가고 암 봉새만 남았는가/자면이 봄 잠 졸다가 바람에 깨어나니/시름겨운 사람 훌륭한 시 생각을 떠올리네”

조선전기 성리학자 김종직은 번잡함을 밀어내고 맑은 경지로 이끈 심자향을 이렇게 읊었다. 심자향은 ‘향의 제왕’으로 불리는 침향가루를 마음 심(心)자가 파인 향틀에 넣어 마치 다식을 박아내듯 찍어 향틀을 들어낸 뒤 불을 피우는 운치있는 향 도구다. 조선시대 문인은 책을 읽거나 시를 지을 때, 또 반가운 벗이 오면 향을 피우는 운치있는 생활을 즐겼다.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 시간’은 선비의 네 가지 취미(四藝)였다.

그 맑음을 귀히 여긴 그 많던 향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불가에서 내려오는 전통향방을 전수받아 한국전통향가 취운향당을 이끌고 있는 능혜스님은 일제강점기를 그 시작으로 본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때 중국 다롄에 있는 향료공장에서 만든 인공향료가 들어오고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향 피우는 걸 터부시하면서 우리 고유의 천연향은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최근 향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국내 첫 향문화 교양지식서 ‘문향, 향기속으로’(차와문화 펴냄)를 낸 능혜스님은 “부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대향로(국보 287호)는 우리 향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며 그 맥이 그동안 끊긴 걸 복원해 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책을 냈다고 밝혔다.

책에는 향의 문화사와 한국향ㆍ일본향의 역사, 침향의 모든 것, 다양한 향 종류와 사용법, 향 도구 등 그가 20년 동안 조사ㆍ연구하고 체득한 향에 대한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향 문화의 기원은 ‘삼국유사’에 실린 묵호자 편이 시초다. 19대 눌지왕 때 중국 양나라에서 의복과 함께 향을 보내왔으며 묵호자는 향을 이용해 공주의 병을 치유했다. 신라 진평왕 때 김유신이 백제ㆍ고구려 등 이웃나라의 침범을 막기 위해 향불을 피워 하늘에 기도하자 광채가 드리웠다는 ‘삼국사기’ 기록도 있다. 신라 헌덕왕(819년) 때는 관료가 귀중한 수입품인 침향을 앞다퉈 사치품으로 사용하자 진골 계급을 포함해 침향 사용을 엄히 금한다는 왕명이 떨어진다.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향문화가 퍼지면서 방향물질을 혼합한 향수로 목욕을 하거나 침향을 약용으로 썼다. 조선시대에도 남녀 구분없이 향낭을 패용했고 회춘을 목적으로 인기가 높았다. 침향은 특히 비싸게 거래돼 왕이 직접 챙겼으며 관료에게 상으로 하사했다.

향목을 태우고 그 향기를 감상하는 ‘문향(聞香)’은 한중일 3국이 공유했지만 현재 일본만 그 전통이 남아있다. ‘일본서기’에는 599년 침향이 아와지섬에 표착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헤이안의 귀족은 각자 취향에 따라 비밀스러운 조제법을 갖고 있었다. 향기를 경연하는 ‘훈물 합’은 귀족의 취미였다.

향은 만들어진 재료와 모양에 따라 여러가지 이름이 붙는다. 향목(香木)은 침향류, 백단 등의 원재료를 작게 잘라서 향로에 넣어 태운다. 환향(丸香)은 각종 향료나 후박나무 껍질, 가물테나무 껍질을 분말로 반죽한 다음 꿀이나 매실육, 재를 섞어서 환으로 만든 향. 가장 많이 접하는 선향(線香)은 느릅나무나 후박나무의 껍질을 가루로 내 침향, 계피, 정자, 용연향, 용뇌 등을 조합한 향료를 원료로 국수발 뽑듯 만든다.

능혜스님은 “좋은 향은 머리를 맑게 하고 몸에도 이로울 뿐만 아니라 먹어도 해롭지 않다”고 말한다. 전통 향에는 오장육부의 경락을 뚫어주는 오향이 들어간다. 폐기능을 돕는 백단, 심장기능을 돕는 정향, 신장기능을 돕는 침향, 위장기능을 돕는 유향, 간기능을 돕는 목향 등 다섯 가지다. 이를 어느 정도로 조합하느냐가 관건이다.

해인사 원당암 혜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능혜스님은 혜암스님의 향방과 ‘방약합편’ ‘동의보감’등 한의학 책을 탐독, 20여년간 전통향 만들기에 매진해왔다. 백단, 침향, 자단향, 안식향 등 전통 향방을 완성한 후 50여 가지 천연 향약재를 조합해 10여종의 자루향과 가루향 5종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방법에 따라 천연향을 생산한 것은 처음이다.

스님은 “최근 몸에 해로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높은 데 반해 톨루엔, 벤젠, 자일렌 등 화학냄새나 나쁜 향에 대해선 일반의 관심이 적다”며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코로도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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