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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불안은 일상을 어떻게 흔드나, 편혜영 소설 ‘밤이....’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소설가 편혜영의 특장을 꼽자면 인물을 생생하게 부조해내는 능력에 있다. 개성이 넘쳐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길거리나 집 주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을 다루는 솜씨가 특별하다.

작가는 이런 주인공을 묘한 상황에 던져 놓고 그의 생각과 행동의 기미를 미세하게 포착해 그려나간다. 인물의 마음에 이는 미세한 동요 파장, 가라앉는 과정을 트레이싱지를 놓고 따라 긋듯 선명하게 그려내 밋밋한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여덟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네 번째 소설집 ‘밤이 지나간다’(창비)는 개인의 내밀한 고독에 초점이 맞춰 있다. 작가는 조용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 그 공간을 벌여 놓고 꼼꼼히 들여다본다.

‘야행’에서 노인은 다리뼈가 참혹하게 뒤틀리는 고통을 겪으며 철거 직전의 단전된 아파트에서 외롭게 아들을 기다린다. 뇌출혈로 남편이 세상을 뜨고 재산을 모두 축내며 노인을 밑바닥 삶으로 내던지는 아들에게 서운함이 있지만 그녀는 표현하지 못한다. 오직 아들이 어서 와 데려가 주길 조용히 기다릴 뿐이다. 대기업에 다니며 단정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가 일탈적 성적 충동을 겪은 뒤 흔들리는 모습을 담은 ‘밤의 마침’, 아들을 잃어버린 고통을 달래고자 찾아간 모임에서 고통에 중독돼가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해가는 여인 엠(‘해물 1킬로그램’) 등 주인공들은 고독하고 불안하다. 이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비밀’이다. 비밀은 불안과 분리, 충족감, 우월감 등 모순된 속성을 지닌다. 가령 ‘야행’의 노인은 남편의 비밀 하나 없는 밋밋한 인생을 허탈해하지만, 작가는 ‘비밀의 호의’에선 모든 비밀과 아쉬움 없이 이별하는 주인공을 통해 나만의 비밀이 다른 이에겐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통찰로 이끈다. 삶의 비의를 슬쩍 드러내는 작가의 솜씨가 능란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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