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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한일 문화전쟁…‘한류’ VS ‘쿨재팬’ 세계 향해 진격
극우 논란을 일으킨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은 여러 모로 일본 전국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가상의 SF만화지만, 그 기저에는 섬나라 국민의 공포심, 대륙침략 야욕을 부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계화 논리,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무라이 정신이 깔려있다. 히데요시가 쌓은 오사카성처럼 만화 속에선 ‘적’인 거인에 맞서 벽을 높이 쌓아 해자를 둘러친다. 러일전쟁에 쓰인 전함 ‘미카사’는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둔갑했다.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의 나이는 겨우 27이다. 무려 2300만부가 팔린 이 만화는 단순히 신드롬을 넘어서, 젊은 세대를 비롯한 일본 사회 전체의 우경화를 진단하는 사례로 꼽히곤 한다.

국내서도 많은 팬층을 거느린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2) 조차 신작 ‘바람이 분다’로 9월 한국 개봉 전부터 전쟁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 20대부터 70대까지 일본 문화계는 ‘우향우’로 향해 있다. 전국통일의 주역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고향 시즈오카 현에 본사를 둔 도요타 자동차는 2011년 말에 히데요시의 부활을 주제로 한 TV광고를 제작해 한국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본 문화의 우경화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더욱 뚜렷해진 현상이다. 위기 속에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논리가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아베 정권은 애국심에 기댄 정치 프로파간다로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고,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만드는 모양새다.



그 적 가운데 하나가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중남미까지 세계적으로 콘텐츠 맹주로 부상한 ‘거인 한류’다. 한때 유럽서도 큰 인기를 끈 J-팝(Pop)과 일본 영화ㆍ드라마가 K-팝과 한국 영화ㆍ드라마에 설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로 한류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영덕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사무소장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투브에서 10억 조회수를 돌파한 소식이 일본 언론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 이후 한일관계 악화와 자존심 때문 아니겠냐”고 했다.

실제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후지TV 등 일본 주요 지상파방송사는 한국드라마 방영을 중단했다. NHK는 물론 TV아사히도 음악 프로그램에서 K-팝 스타의 출연을 금지시켰다. 일본 오리콘 차트에는 인피니트, 2PM 등 K-팝 스타의 노래가 여전히 상위권에 진입해 있다. 일본 내 한류 고정팬의 규모는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 아이돌의 TV 출연이나 K-팝 노출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올 상반기 일본 내 K-팝 음반과 공연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30% 가량 감소한 것으로 현지 관계자는 파악했다. 김 소장은 “한류의 부상이 주변 일본과 중국에 자극을 줘 정부의 한국드라마 유통 제한 등 항(抗) 한류 정책 입안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아베 정권은 한류붐 조성에 한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보고, 일본 문화 해외 진출을 위한 ‘쿨재팬’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쿨재팬’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J-팝 등 대중문화 뿐 아니라 자동차와 오토바이, 전기기기 등의 브랜드, 요리, 술, 패션, 건축, 유도, 검도, 다도 등 의식주와 관련한 근대문화까지 포괄한다. 2020년까지 1000억엔(1조원) 펀드를 조성하는 야심찬 계획으로, 올해 약 500억엔을 투입한다. 2009년 이후 하락세인 방송 수출을 2018년까지 현재(2011년 지상파 기준 약 63억엔)의 약 3배로 늘리는 계획도 담겼다. 또 영상 현지화 지원에 95억엔, 마케팅 지원에 60억엔, 해외방송국과의 공동제작에 15억엔 등 170억엔을 영상콘텐츠에 쓰기로 했다.

올해 2월에는 싱가포르에서 무료채널 ‘헬로우재팬’ 채널이 개국, 영어자막 24시간 방송 형태로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덴츠, TV아사히, TV도쿄 등이 합자해 만든 이 채널은 한류의 전통 안마당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베트남, 인도, 대만 등지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동남아는 물론 유럽과 중남미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에 맞서 일본의 쿨재팬 전략이 본격화하면서 한일간의 문화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양상이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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