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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발레단에 매주 바나나 보내는 과일도매상 김영남씨
국립발레단 단원 80명은 거의 매주, 운동할 때 좋다는 바나나를 선물받는다. 2년째 품질 좋은 과일이 공연이 있는 주간이면 빠짐없이 연습실로 배달되고 있다. ‘키다리 아저씨’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청과 도매업을 하는 김영남(36) 바닐라프루츠 대표다.

“발레를 좋아한 건 한 5년 정도 됐어요. 내가 좋아하는 공연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후원회에 전화해서 과일을 보내드리겠다고 했죠. 마음 같아선 한 트럭씩 보내드리고 싶죠. 진짜 마음으로는 극장도 지어주고 싶어요.”

최근 동숭동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 대표는 어느 인기드라마에 출연 중인 말라뮤트 이름 ‘떡대’란 단어가 연상될 만큼 체격이 좋다. 씨름이나 레슬링, 복싱 같은 과격한 격투기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용모인데, “다시 태어나면 발레리노를 하고 싶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김 대표는 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을 캐스팅 별로 다 챙겨보는 건 기본이고, 유니버설발레단 등 민간발레단의 주요공연과 수도권 지역 공연까지 일부러 찾아가 관람하는 발레 ‘광팬’이다.


사실 과일 도매상의 하루 일과는 한가로이 취미 생활을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평일 새벽 1시에 가락시장으로 출근해 경매 참여, 고객 응대, 배송 등의 모든 업무를 마치면 퇴근은 빨라야 오후8시다. 잠도 하루 3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평일 오후8시 발레 공연을 예매해두고선 가지 못하는 때도 많다. 그럴 때 김 대표는 집에서 발레 공연 DVD를 보거나 유투브에서 해외 유명 발레단과 무용수의 공연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바쁜 일과 중에도 국립발레단 아카데미를 3개월 간 다니며 발레를 직접 배워보기도 했다. 당시 일반인 수강생 가운데 남성은 김 대표가 유일했다고. 늦게 나마 아마추어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보고 싶었지만, 발목에 금이 가 포기했다.

그가 발레에 ‘푹’ 빠진 건, 5년 전 지인에게 고객을 뺏기고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였다. “뭔가를 좋아하면 파고들고 끝장을 보는 성향인데, 산악자전거와 익스트림 스포츠를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까지 심하게 했죠. 사업도 어렵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 위안 삼아 본 게 발레 공연이었습니다. 처음 본 발레는 두시간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너무 좋았죠.”

천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발레가 그에겐 ‘힐링’이었다. 그 뒤로 현대 발레와 작은 발레단의 공연까지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발레의 매력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거에요.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목욕탕에서 때한번 밀고 나온 것 처럼 영혼이 정화되죠.”

그는 지금도 발레 공연를 보러 이동 중, 막이 오르기 전 오케스트라 단원이 준비를 하고, 객석이 두런두런 거리면 심장이 콩닥콩닥 뛰면서 마구 설렌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무용수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슬기, 정영재다. 박슬기가 연기 한 ‘지젤’을 보고는 울기도 했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무용수도 연습을 많이 했겠지만 그 뒤에서 스태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이미 팬을 넘어 국립발레단의 ‘한 식구’였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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