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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었던 이중 · 삼중 안전장치…그 뒤에 대재앙의 그림자가…
美 방사능 유출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냉각시스템·급수밸브 한꺼번에 고장
잇단 참사 초래 첨단시스템의 역설



‘아무리 효율적인 안전장치를 해도 사고를 피할 수 없다.’

흔히 큰 사고가 났을 때 ‘인재(人災)’라는 표현을 쓰지만 예일대 찰스 페로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대형사고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다. 운용자나 부품의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속성이라는 얘기다.

그는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RHK펴냄)에서 원전, 핵무기, 유전자 조작, 독극물 내지 폭발물을 실은 화물선 같은 대부분의 고위험 시스템은 사고발생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특별한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시스템 사고는 흔히 발생하지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무리 산업기술, 자동화 장치들이 발달해도 불가피하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고안해낸 장치들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가령 X가 고장나면 Y에도 문제가 생기고 두 장애의 상호작용에 의해 불이 나고도 화재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도 예상치 못할 수 있다. 사후에 경보장치와 소방장치가 추가될 테지만 그만큼 예상치 못한 장애들이 상호작용을 일으킬 위험도 늘어난다.

페로 교수는 시스템의 복잡성과 연계성이 너무 심해서 사고를 예방하는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기술과 조직을 개선해도 사고 방지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시스템이 제기하는 위험을 완전 제거하는 길은 시스템을 폐기하거나 재설계하는 일밖에 없지만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이를 실행하기는 어렵다.

‘위험 제로’가 불가능하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페로 교수의 대안은 고위험 속성을 분석하는 게 우선이다. 사고 발생 이유와 불가피성을 잘 이해해야 특정한 기술을 폐기하거나 폐기할 수 없는 경우 개조가 가능하다. 사고 발생 가능성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더 위험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다양한 대형사고의 사례를 통해 누구의 잘못이랄 수 없는 작은 문제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79년 미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그런 시스템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고는 노심융해로 인한 방사능 유출과 폭발위험으로 미국 전역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고 집단적 공황에 가까운 혼란을 야기했다. 공식적으로 이 사고는 운용자의 실수로 인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페로 교수의 주장이다. 사고는 냉각 시스템에서 시작됐다. 냉각수를 거르는 복수 탈염 장치에 불순물이 섞이면서 터빈의 작동이 멈춘 것이다. 이런 문제는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대비해 만든 비상 급수 펌프가 막혀 문제가 커졌다. 사고 이틀 전에 보수한 후 밸브를 닫힌 상태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밸브가 닫혔음을 말해주는 계기가 스위치에 달린 수리표에 가려져 있었다. 따라서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는 밸브가 닫혀 있음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운영자들이 몇 분 후 급수 비상펌프가 가동되지 않은 것을 확인해 밸브를 열었지만 이미 상당한 초기 손상이 진행된 후였다.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는 작은 사고가 겹쳐 일어난 것이다. 저자는 원전산업과 함께 긴밀하게 연계된 항공산업, 해운산업 등 참사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복잡한 산업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거대한 시스템에서는 작은 장애들이 자주 일어난다. 파이프가 터지거나, 날개가 떨어지거나, 엔진이 고장 나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형사고를 신중하게 재구성해보면 대개 사소한 장애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본문 중)

댐, 호수, 탄광 등의 생태계 사고 역시 연계된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정상 사고와 다르지 않다.

찰스 페로는 고위험 시스템을 세 범주로 나눈다. 첫 번째 범주에는 핵무기와 원전처럼 합리적 편익보다 불가피한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폐기해야 할 시스템들이다. 두 번째는 반드시 필요하거나 편익이 크지만 상당한 노력을 들여서 위험성을 줄여야 하는 해상운송이나 DNA 재조합 같은 시스템. 셋째는 일정한 내부 교정과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면 개선이 가능한 화학공장, 항공운송, 광산, 화력발전소, 고속도로 같은 시스템들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지금 현실을 더 잘 설명해준다. ‘시스템이 조립이 아닌 변환 절차를 활용할 때 작은 발단이 종종 거대한 사고로 이어진다’ ‘기술적 보완이 부실한 조직이나 시스템 설계를 덮는 허울에 불과하다’ ‘소위 위험 평가를 수행하는 새로운 종류의 점술사들을 맹신하지 말라’는 저자의 경고가 날카롭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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