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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아트> 폭력에 짓밟혀도…그녀들,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다
이집트 페미니즘 작가 가다 아메르 내한展
‘파란 브래지어의 소녀들’
브론즈로 드로잉한 듯
수많은 선 모여 달걀 모양 이뤄

“경찰 폭력진압에 맞섰던 여성들
내 작품은 그 용기에 대한 찬사”



이집트에서 태어나 미국을 무대로 활동 중인 작가 가다 아메르(Ghada Amerㆍ50)는 어느날 SNS 속 영상을 보다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고국인 이집트에서 타전된 영상이었다.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외치던 시위대의 한 여성이 경찰의 발길질에 옷이 벗겨져 파란 브래지어가 그대로 노출되는 장면이었다. 폭압적인 진압장면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날 밤 한숨도 못 잤어요. 너무도 가슴이 아팠죠. 물리적 폭력을 감수하면서도 민주화를 외치는 여성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이 조각입니다.”

아메르는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된 조각 ‘파란 브래지어의 소녀들’을 가리키며 “그 여성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조각이지만 어둡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시 여성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으나 내 작품 속 여성들은 당당히 일어선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죠”라고 밝혔다.

 
카이로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프랑스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가다 아메르의 신작 ‘파란 브래지어의 소녀들’(스테인리스스틸. 높이 182.9㎝). 이집트를 휘몰았던 반(反)무바라크 시위에 가담했다가 경찰에 짓밟힌 여성을 형상화한 이 조각은 안이 뻥 뚫린 것이 특징. ‘붓으로 그린 입체드로잉’을 통해 정치와 성(性), 자유와 종속의 양면성을 안과 밖의 구조로 풀어낸 작품이다.                                                                                                                                      [사진제공=국제갤러리]

8명의 여성이 머리와 어깨를 대고 빙 둘러서 있는 조각은, 속이 텅 비어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마치 브론즈로 드로잉을 한 것처럼 수많은 선이 모여 달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아랍권을 대표하는 유명작가 가다 아메르가 서울 소격동의 국제갤러리에서 ‘그녀에 대한 참조’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연다. 전시에는 문제의 브론즈 조각 등 달걀 모양의 조각들과,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황금빛 ‘자수(刺繡)회화’가 두루 나왔다.

‘왜 화폭에 바느질을 하느냐’는 물음에 아메르는 “바느질은 전 세계 누구나 하는 일이고, 특히 여성의 매체로 각인돼 있다. 지극히 여성적인 매체를 새로운 기법으로 삼아 ‘여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자수회화는 얼핏 보면 서구 주류사회의 추상표현주의 작품 같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실로 이뤄진 가는 선들이 여성의 형상을 뒤덮고 있다. 여성들은 포르노잡지에서 따온 에로틱한 이미지다. 단, 정면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는 게 좀 다르다.

아메르는 지구촌 여성들의 성적 역할이며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이 때문에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되곤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작가이자, 여성이다. 작가는 으레 남성이어야 한다고 여기는지, 여성작가 앞엔 굳이 ‘여류’라는 표현을 붙인다. 그건 온당치 않다. 관심이 가는 주제를 다루는데, 그게 단지 ‘여성’일 뿐인데 말이다. 그래도 배타적인 느낌이 나는 ‘중동 작가’로 분류되는 것보다는 ‘페미니즘 작가’가 조금 낫겠다”고 했다.

서울 전시에는 ‘사랑’에 관한 아랍어를 구불구불 이어붙인 검은 조각도 내놨다. 속이 텅 비어 있는 지름 152.8㎝의 이 조각의 제목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들’이다.

아메르는 “아랍어에 사랑에 관한 단어가 100개나 되는 걸 아느냐? 그러나 바깥에 알려진 건 폭력이다. 사랑, 부드러움, 그리움, 바람, 죽을 만큼 사랑 등 이렇게 좋은 단어를 더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02)735-8449

yrlee@heraldcorp/cp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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