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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효리, 가수로서 강점은 ‘그럴듯함'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이효리가 3년 만에 돌아왔다. 21일 5집 ‘모노크롬’에 실린 16곡을 발표한다. 선공개곡 ‘미스코리아’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공개 당일 7개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미스코리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5집 타이틀곡 ‘Bad Girls’도 기대가 된다. 22일 컴백방송인 Mnet ‘2HYORI SHOW’에 이어 24일 KBS ‘뮤직뱅크’로 컴백 신고를 치른다. 이번에는 라디오 출연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이효리는 정말 특이한 가수다. 조용필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퍼포먼스가 50%를 넘는다면 음악이 좋아도 음악적 가치는 깎일 것 같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이효리는 퍼포먼스가 줄곧 50%를 넘은 가수였다.

하지만 이효리는 문화아이콘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물론 대중이 이효리에게서 엄청난 노래실력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효리는 섹시한 가수로서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이효리 이후 섹시함을 콘셉트로 내세운 가수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이효리를 능가할 만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효리는 개점 휴업 상태인데도 섹시 아이콘의 정점에 올라있었고 이번에는 또 다른 컨텐츠를 선보였다.



‘미스코리아’는 3년 전 발표한 4집 ‘h-logic’과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하지만 이효리는 이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그럴듯하게’ 여겨지도록 만든다. 이것이 이효리의 가장 큰 힘이다.

▶크게 바뀐 스토리를 소화하는 힘=2000년 4집은 ‘텐미닛’의 명성을 이어받은 전작 ‘유고걸’의 성공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는 화룡점정판이었다. 그녀의 자신감은 그칠 것이 없는 과도함, 그것이었다. 4집 타이틀곡 ‘chitty chitty bang bang’에서는 힙합녀로 변신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잘못하면 시건방져 보이는 도발과 오만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클럽에서 옷 잘입고 멋있는 여자가 춤까지 세련되게 춘다면 남자들의 선망일 수밖에 없는데, 이효리가 남성들에겐 그런 ‘판타지녀’였다. 그러면서도 이효리는 여자들에게도 호감이었다. 내숭 떨며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가 아니라 자의식을 지닌 채 남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기 작곡가에게 걸려 4집 수록곡 14곡 중 7곡이 표절로 밝혀졌다. 이효리가 처음으로 메인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앨범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이효리는 잠수를 타며 오랜 침묵이 흘렀다.

이효리의 인생도 크게 바뀌었다. 유기견 보호 활동에 주력했으며 채식주의자로 변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을 통해 결연을 맺은 해외 아동을 만나 봉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효리가 동물보호 운동을 하는 것이나 극빈층 아동을 보살피는 것이나 잘 어울렸다.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해 개집을 청소하고 유기견들을 달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이효리는 ‘TV 동물농장’과 같은 반려동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효과가 클 것이다. 인도의 극빈 아동들과 놀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이발소를 운영하던 어린 시절의 단칸방 생활을 떠올렸다고 한다. 유기견, 자살, 빈곤층, 독거노인 문제 등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SNS로 소통한다. 소셜테이너로서의 이효리의 모습은 어색하지 않다.

▶‘미스코리아’에서 멈추지 않는다. 진지함과 유머와 도발 모두 가능=그런 과정을 거친 후 내놓은 ‘미스코리아’는 요즘 트렌드와는 벗어난 곡이다. 아날로그적인 밴드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이효리의 자작곡으로 가사도 직접 썼다. 가사는 이효리가 대중에게 하고싶은 말이기도 하다. ‘유리거울 속 저 예쁜 아가씨/무슨 일 있나요 지쳐 보여요(중략)명품 가방이 날 빛내주나요/예뻐지면 그만 뭐든 할까요/자고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에/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진 않아’ 이렇게 변한 스토리와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이효리는 놀랍다. 이효리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 중요한가요/망쳐가는 것들 내 잘못 같나요/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 봐요/다 괜찮아요’라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힐링하며 노래를 마무리한다. 



이효리는 사회성 있는 노래인 ‘미스코리아’로 계속 밀고나갈 요량은 아니다. ‘미스코리아’나 ‘배드걸스’ 그리고 ‘유고걸’ 모두 이효리의 다양한 목록 중의 하나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스토리에 따라 이 콘텐츠들은 변화와 진화의 양상을 띨 것이다. 이건 섹시한 가수 중 이효리만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이효리는 섹시함(무대)과 털털함(예능), 이 두 가지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래할 때는 섹시한 카리스마를 뽐내다가, 예능에서는 털털함을 보여 대중에게는 ‘언니’나 ‘누나’로 편안하게 다가간다. 방송 중 신동엽이나 유희열이 야한 이야기를 하면 이효리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여성도 드물다.

방송에서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나온 이효리가 “다 보여주는 것보다 살짝 살짝 보여주는 게 좋다”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소셜테이너로서의 진지한 모습도 어울리고 19금(禁) 농담을 해도 어울린다.



그것이 이효리가 ‘미스코리아’와 같은 분위기도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이다. 섹시함도 겉모습만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섹시함을 체득한 데서 오는 여유와 자신감이 깔려있다. 나이 든 젊잖은 사람이 불쑥 야한 이야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효리도 나이가 들며 성숙해지면서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 폭이 더욱 넓어졌다. 5집 ‘모노크롬’ 활동이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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