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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동적 무대와 안무로 다시 태어난 윤동주 시
연희전문학교 정문, 경성역 앞 거리, 전차, 교회 첨탑…. 1930년대 서울의 풍경은 근현대 박물관의 한 관을 옮겨 놓은 듯 실감난다. 조명은 깊은 푸른색. 앞무대(프로시니엄)로서 높이 올라온 돌담 위로 ‘윤동주’가 읊는다. ‘쫓아오던 햇빛인데/지금 교회당 꼭대기/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지난해 초연돼 호평받은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가 오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재공연한다. 한아름 작가와 권호성 연출이 1930ㆍ40년대 윤동주가 연희전문에서 보낸 푸르른 청춘의 시절(1막)과 일본에서 유학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기까지(2막)의 짧은 일생을 뮤지컬화했다.

압권은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시인의 내면과 시대의 불운을 강렬한 시각으로 대비시킨 무대다. 거리의 간판, 의상 뿐 아니라 열차와 선박, 전투기까지 대형 소품으로 등장시키는 공을 들였다. 자의식과 부끄러움이 많던 시인의 내면은 푸른색 조명과 큼지막한 달로 표현된다. 달은 시인에게 세상을 직시하라고 강요하듯 무대의 화면을 한 가득 채운다. 전쟁의 참상과 고통은 붉은 색의 조명과 욱일승천기 위로 피처럼 흘러내리는 붉은 색 이미지로 그려진다.

일제의 맹목적인 군국주의, 전쟁의 광기는 배우들의 역동적 군무로 잘 드러난다.


‘팔복(八福)’ ‘간판 없는 거리’ ‘십자가’ ‘아우의 인상화’ ‘서시’ ‘참회록’ ‘이별’ ‘별헤는 밤’ 등 윤동주의 대표 시가 극 곳곳에 운율 그대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동주씨가 시인인 걸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고 독려하는 가상 인물 여성 이선화가 등장한다. 1막에서 “이 시국에 한가로이 시나 쓰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고 창피합니다”라던 윤동주는 2막 마지막 장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에 동원되고, 강제 징집되는 친구의 환상을 보면서 “시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고 외치며 숨을 거둔다.

지난해에 이어 윤동주 역을 맡은 배우 박영수는 따뜻한 내면과 감수성을 지닌 윤동주를 제대로 이해한 듯 하다. 전체 영어 자막이 서비스된다. (02)523-0855.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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