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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조삼모사(朝三暮四) 경제학
답이 없는 성장이냐, 복지냐 논쟁에도 조삼모사가 깔려 있다. 국민 누구든 복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무상급식이나 양육수당이 폐해가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성장 없는 복지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든다.



저공(狙公)이 원숭이에게 한 첫 제안은 ‘아침에 도토리 3개, 저녁에 4개(朝四暮三)’, 원숭이와 타협안은 ‘조삼모사(朝三暮四)’였다. 저공의 잔꾀, 여기에 속은 원숭이의 어리석음이 조삼모사 우화가 던지는 메시지다. 그렇다면 실제로 원숭이는 저공에게 농락을 당한 것일까?

경제학 쪽에서 보면 아니다. 우리가 원숭이를 비웃는 것은 어쨌든 하루에 받을 도토리는 7개인데, 당장 아침에 4개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경제동물은 일본인이 아닌 원숭이다. 원숭이들이 화폐의 시간 가치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10원과 1년 뒤 10원의 가치가 같을 순 없다.

원숭이 눈으로 보면 자신들을 끔찍이 보살피던 저공의 살림살이가 예전만 못하다. 저공의 재정상황이 저녁 때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같은 7개라면 일단 아침에 4개를 받아 두는 게 유리한 것은 경제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아침에 4개를 받아서 1개를 다른 곳에 투자할 여력까지 생기는 상황이다.

조삼모사의 심리를 알 수 있는 게 또 하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싼 식당인지 여부는 메뉴판에서 차이가 났다. 부가세 10%, 어떤 곳은 봉사료 10%가 덧붙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굳이 이런 식으로 ‘고급음식점’ 티를 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밥 먹은 사람이 내는 돈은 똑같은데, 조금 싸게 보이려고 하는 고급식당의 잔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올해부터 소비자 중심으로 메뉴판이 바뀌었다. 메뉴판에 소비자가 실제로 내야 하는 최종 지불 가격을 표시하기로 제도가 개선됐다.

소비자 입장에선 부가세 별도나 포함이나 내는 돈은 똑같다. 기분 문제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부가세 별도라는 메뉴판은 음식점 주인에겐 효율적인 전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노벨상과 함께 경제학자에게 가장 권위있는 상인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자로 선정된 라지 체티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메뉴판에 부가세를 포함한 최종가격을 표시할 때가 부가세를 뺀 가격을 표시하고 계산할 때 세금을 받는 것보다 매출이 8%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체티 교수는 “전체 세금 인상폭이 같아도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답이 없는 성장이냐, 복지냐 논쟁에도 조삼모사가 깔려 있다. 국민 누구든 자신에게 한 푼이라도 더 오는 복지를 성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무상급식이나 양육수당이 폐해가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성장 없는 복지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뉴스는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386세대만 먹고 살기 위한 조치’, ‘영구집권을 위한 보수의 전략’ 등 댓글엔 비판이 더 많았다. 정부는 세대별 일자리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청년실업이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원숭이의 선택은 현명했다. 하지만 저공도 올바른 판단을 했다. 정책은 어차피 논쟁을 부른다. 조삼모사 밑에 깔린 지혜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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