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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문학을 읽는 대통령
“픽션을 읽으십시요.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캐나다의 유명 작가인 얀 마텔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의 일부다.

‘캐나다 작가가 한국의 대통령에게?’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상황이다. 마텔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파이 이야기>를 쓴 작가다. “세상을 이해하고 꿈꾸는 데 문학 작품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믿음아래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4년 동안 스티븐 하퍼 캐나다 수상에게 문학 읽기를 권하는 101통의 편지를 보낸 ‘별쭝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하퍼 수상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이 번역돼 최근 한 출판사에 의해 한국에 소개됐다. 마텔은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박 대통령에게 보냈다. 그것이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 아까운 의미를 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주요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이 용어가 ‘민족중흥’이나 ‘국민총화’와 같은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국가 중심적 개발전략의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지만, 문화를 핵심 국정지표로 삼은 것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서도 정부의 문화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 예산이 어디에 투입될지, 어떤 변화가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문화융성이란 국정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 기관이 실천 전략을 만들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화를 대하는 지도자의 태도다. 문화를 통치나 정치, 또는 경제적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보느냐, 아니면 문화를 즐기느냐의 문제다.

문화를 융성시키기 위해 마치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듯이 목표를 정하고 이의 달성을 재촉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문화융성을 이룰 수 없다. 국민들이 각종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향유의 주체가 되도록 해야 목표에 그나마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융성이라는 거대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문화를 개개인이 얼마나 즐기고, 그것을 통해 삶의 힘겨움을 나누고 희망과 활력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특히 문화예술계가 원하는 대통령도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는 대통령이다.

얀 마텔은 수상에게 101통의 편지와 함께 101권을 조금 넘는 책을 선물로 보냈지만, 보좌관이 대신 쓴 편지 몇 통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가 보낸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답장은 한 통도 없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소설이나 시를 읽을 시간을 내긴 힘들 것이고,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마텔도 과도해 보이지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지도자를 갖고 싶은 것은 캐나다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한국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크다. 산업시찰하듯이 인기있는 영화나 공연을 관람하거나 정치ㆍ경제 전략의 하나로 문화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문화를 즐기는 지도자를 보고 싶은 것이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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