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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단종② 영월 장릉㉮--“단종릉 찾아라” 어명에 부임한 사또 셋 죽어나가

  • 기사입력 2013-05-0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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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 영월] “시신은 강물에 내버려라. 그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노라”

세조의 엄명이 떨어지고 산천초목이 벌벌 떨던 1457년 10월, 몰래 움직이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영월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와 그를 돕는 정사종(丁嗣宗)이었다. 정사종은 단종이 영월로 유배오자 군위 현감 관직을 버리고 달려왔다.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옥체는 떠내려 가지않고 빙빙 돌며 되돌아오곤 했는데 옥같이 고운 손가락은 수면 위로 떠있었다고 기록은 전했다.

엄흥도는 동강가로 가서 죽임을 당해 염도 못한 채 버려진 옥체를 수습해 지게로 짊어지고 동을지산(冬乙旨山)으로 향했다. 주변사람들이 큰 화 입을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그들은 “의로운 일을 하고 화를 입는다면 나는 달게 받겠다” 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 말은 두고두고 영월에서 명언이 됐는데 오늘날 위정자들도 꼭 되새겨봐야 할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디 정치인 뿐일까마는.

산에는 이른 눈이 내려 마땅한 묘자리 찾기가 어려웠다. 마침 저 앞에 노루 한 마리가 일어나서 달아나자 엄흥도는 눈이 없는 그 자리에 지게를 내리고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나려 하는데 지게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엄흥도는 그 자리가 명당의 계시라고 판단, 땅을 파고 단종을 표시 안나게 모신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묘는 비밀에 부쳐졌다.

조선 제 6대 임금 단종의 능인 장릉.
왕릉 관광온 사람들.

숙부로부터 죽음으로 내몰린 어린 왕 단종의 무덤 장릉(莊陵)은 이렇게 탄생했다.

550년 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잠든 능, 조선 27명의 왕 중 유일했다.

그 슬픈 ‘단종의 향기’를 따라 가봤다. 영월에서는 단종과 관련된 유적 유물을 단종의 향기라고 부른다. 김원식 선생님은 단종의 애사를 좀 더 여유롭게 느끼기 위해 차를 영월군청에 세워두고 걷자고 했다. 필자도 그게 좋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읍내를 동쪽으로 관통해 관풍헌과 금강공원의 민충사를 거쳐 동강을 내려다 보고 다시 영월향교를 지나 창절사를 두루 관람하며 약 5km의 거리를 걸어서 장릉까지 갔다. 군데군데 이 모든 것에 단종의 향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장릉에 다다를 즈음, 커다란 저수지가 나타났다. 장릉지(莊陵池)다. 김 선생님은 임금의 혼과 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한자리에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경액지(景液池)라고 했다. 이곳은 노루조각공원으로 깔끔하게 조성돼 있었다. 도깨비 동상도 설치돼 있었는데 노루와 함께 도깨비 또한 단종과 사연을 맺고 있다. 

장릉 입구 아래쪽에 있는 장릉지. 단종과 관계있는 노루와 도깨비 상도 있다.

단종의 묘를 처음에 60년간 숨겨왔는데 그때 도깨비들이 묘를 지켜줬다고 한다. 사람들이 와서 나무를 벤다든가 땅을 파면 도깨비들이 나타나 “이곳엔 어르신이 잠든 곳이니 절대로 들어오지 마라”며 쫓아낸 후 서로 엉켜 뛰어놀았는데 이곳 능말 주민들은 도깨비들을 흉내내 지금까지도 매년 가을 도깨비축제를 열고 있다.

이윽고 장릉 정문이다. ‘세계유산’이라는 큰 돌에 새긴 간판도 보인다. 장릉을 포함 조선왕족과 관련된 능 40기가 지난 2009년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김 선생님은 국가에서 이곳 장릉 주변 100만평을 성역화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생전의 한, 단종은 풀 수 있을까.

장릉의 배치도(왼쪽)와 장릉 입구, 그리고 세계유산 표지석.

입구로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 모서리로 향했다. 김 선생님은 이것부터 봐야 한다고 했다. 작은 정자와 그 아래 파랗게 이끼 낀 바윗돌이 보였다. 자칫 관심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흔한 정자, 그러나 그 의미 만큼은 흔한게 아니었다. 두견새가 이 바위에 앉아 임금님을 배알했다고 해서 배견암(拜鵑岩)이라고 부른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얘기가 전해온다.

정조 때인 1791년 3월28일 영월부사로 내려온 박기정(朴基正)이 이 배견암에 두견새가 앉아 왕릉을 향해 우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고 애처롭게 여겨 좀 더 편하게 왕을 배알하게 정자를 지어 줬다. 그게 바로 옆의 정자 배견정(拜鵑亭)인데 세상에서 유례없는, 새에게 지어준 정자다. 

배견정과 배견암. 두견새가 단종을 배알하는 장소로 새에게 지어준 세계 유일한 정자로 큰 의미를 갖는다. 작은 사진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

바위에는 박기정이 ‘배견암’과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새긴 글씨도 남아있었다. 이 두견새는 단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영월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녀들이 환생했다는 이야기도 갖고 있다. 박기정은 사육신 박팽년의 혈손이다. 이 정자와 바위, 그냥 지나쳤으면 아까웠을 포인트였다.

그 옆으로 가면 아담한 비각이 있다. 영월부사 박충원(朴忠元)의 비석이다. 어떻게 일개 사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비각이 왕릉 입구에 세워져 있을까. 존재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영월부사로 박충원의 공덕비각이 왕릉 오르는 계단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박충원은 단종 사후 84년만인 1541년 영월부사(사또)로 부임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 중종임금이 단종의 능을 찾으라며 영월부사로 내려보낸 사람이 3명이나 연달아 죽어나갔다. 그해 1월에 한 명, 5월에 한 명, 7월에 한 명이 잇따라 원인 모르게 죽자 아무도 영월부사로 부임하려 하지 않았다. 원님 셋이 자고나면 죽자 민심도 흉흉해져 갔다.

(영월 장릉㉯에서 계속)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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