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호는 충무로의 대표적인 감초 배우다. 어떤 영화, 어떤 역할을 맡아도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벽이 없는 남자다.

김상호는 현재 박스오피스 우위를 점하고 있는 ‘런닝맨’에서 허당 형사 상기로 분했다. 역시나 인간적이고 정감 있는 캐릭터다. 자칫하면 산으로 갈 수 있는 상기 역을 자신의 색깔에 맞게 맛깔스럽게 소화했다.

푸근한 웃음과 이웃 같은 친근함, 여기에 탄탄한 내공을 지닌 연기력까지 갖춘 김상호를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삼청동에서 만났다.

# 상기 役,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극 중 김상호가 분한 상기는 사실 썩 신선한 캐릭터는 아니다. 지극히 웃음을 주는 인물로 영화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양념과도 같다.

“사실 저는 처음에 상기 역할에 끌리지는 않았어요. 감독님과 많은 상의를 거쳤고 의지했죠. 제가 생각한 상기에 대해 의견을 내놓기도 했고, 감독님은 추려서 받아들이셨죠. 철학적인 고민이나 인간 존재의 이유 뭐 이런 메시지를 지닌 인물은 아니니까요.(웃음)”

상기 곁을 지키는 인물은 다름 아닌 선영(조은지 분)이다.



“은지는 상기가 완성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에요. 은지가 직선이라면 상기는 곡선이거든요. 뱅글뱅글 겉도는 놈을 은지가 꽉 잡아주는 거죠. 실제 촬영장에서 리드했냐고요? 저희 촬영장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하하. 현장에서 서로 궁금한 거 있으면 주저 없이 물어보고, 잡담도 하고 팀워크가 참 좋았거든요.”

김상호는 또 조동오 감독에 대해서는 “남녀 간의 러브라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 같다. 그래서 굉장히 남성적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차분하고 세심한 스타일이더라.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참 착하시다”고 말했다.

# 아끼는 후배 이민호, 강우석 감독과의 경쟁은..

김상호의 연기는 정석이 없다. 극이 지루하지 않도록 특유의 애드리브를 집어넣으며, 상대 배우와도 대본에 없는 호흡을 주고 받기도 한다.

“애드리브를 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 리허설을 불태우는 아이디어들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어요.(웃음) 감독님 마음에 드시면 쓰는 거고, 안 되면 킬(?)되는 거고 그렇죠 뭐. 영화를 많이 찍긴 했지만 연출적인 감각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김상호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후배는 누구일까. 그는 “요즘엔 우리 (이)민호 군이 좋다”며 웃어 보였다.

이민호는 ‘런닝맨’에서 신하균의 아들 기혁으로 열연했다.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 관객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민호는 참 올바른 아이인 것 같아요. 너무 귀엽고 예쁩니다. 예의도 굉장히 바르고, 항상 선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예쁘더라고요. 연기도 그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런닝맨’의 경쟁작은 단연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이다. 김상호와 강 감독은 지난 2010년 ‘이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3년 만에 동지에서 적이 된 기분은 어떨까.

“워낙 뭐 흔한 일이지 않습니까. 저도 생각 못 했는데 그렇게 됐네요. 한국 영화가 잘 되야죠. 감독님 작품도 잘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강 감독님 영화니 완벽할 것 같습니다.(웃음)”

# 연기 아니면 뭘 해야 합니까?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번진다. 김상호는 관객들에게 ‘행복 전도사’같은 존재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지만, 배우로서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릴 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죠. 지금은 걱정 없습니다. 어떻게 보일 지가 두려워 악역을 하고, 웃기는 역을 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배우는 모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 저를 보고 행복해하고 재밌어한다면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죠.”



‘웃기는 배우’라는 편견을 부숴버린 작품이 바로 OCN 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 텐2’다. 현재 독사로 불릴만큼 치열한 형사 백도식 중으로 출연 중이다.

“백두식은 항상 두뇌가 반짝반짝한 친구죠. 이전에 보였던 모습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최)우식이가 한 말이 참 웃겼어요. ‘선배님, 너무 다른 모습이네요?’였습니다. 제가 뭐 원래 그렇게 웃기기만 한 건 아닌데 말입니다. 하하.”

김상호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다른 곳에 눈을 팔지 않으며 오로지 본업에 충실한 배우 중 한명이다. 사업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을 것이란다.

“저는 제 직업을 너무 좋아합니다. 평생 이 짓만 해서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른 일을 해서 무언가를 할 재주가 없습니다. 계획도 없고요. 그저 배우로서 꾸준히 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바람이라곤 그거 하나 뿐입니다.”

양지원 이슈팀기자 /jwon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