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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고창 청보리밭②--청보리 초원에 서면 나도 영화의 주인공
(내용 ①에서 계속)

-- 새파란 지평선 너머엔 ‘초록 지상낙원’이 --

[헤럴드경제=고창]구릉지를 넘어 아래쪽 작은 연못가로 향했다. 밭과 밭 사이 길이 난 곳에 있는 이 연못에는 버드나무가 눈을 뜰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엔 넓게 일직선으로 길이 나 있었는데 젊은 남녀 둘이 왔다갔다 했다. 뭘 하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저쪽 전망대 근처에서 사진작가들이 이들을 모델로 연출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청보리밭 사잇길.

사실 이 학원관광농원의 아름다운 경치는 영화나 드라마에도 많이 찾았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풍경을 영상에 담아간 작품으로는 웰컴투 동막골, 각시탈, 만남의 광장, 식객, 늑대소년, 잘 살아보세 등이 있다. 이외에도 철마다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리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양쪽 보리밭 사이로 시원하게 난 흙빛 길을 따라 또 다른 언덕을 넘어섰다. 청보리축제가 열리는 이 보리밭의 주무대는 중심지에 있는 학원관광농원의 밭 15만평이고 주변에 여러 이웃들이 또 비슷한 규모의 밭에 청보리를 심어 총 30여만평이 펼쳐져 있다.
 
푸른 청보리밭 초원의 여유

주변까지 빙 둘러 산책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도깨비숲을 만났다. 오래된 대나무숲인데 옆에는 절 터와 빈 집이 함께 있어 스산한 느낌이 감돌았다.

이 마을에 전해내려오는 도깨비숲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예전의 어느날 갑자기 도깨비들이 학원농장이 있는 이 동산에 나타나 동물과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곤 했다. 그렇게 여러해 지난 후 이 농장에 정착한 이학 여사(진의종 전 총리 부인)와 마을주민들이 이곳에 종학사라는 절을 짓고 도깨비를 동산 아래 대나무 숲 속으로 몰아넣은 뒤 못나오게 사천왕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 뒤로 도깨비들이 마을로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사천왕상이 숲 옆에 남아있다. 도깨비 얘기, 지금은 누가 믿지도 들을려고도 하지않는 얘기겠지만 필자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도깨비 얘기는 빠짐없이 들어왔던 메뉴였다. 이 대나무 숲 속 오솔길을 따라 걸어보자. 혹시 도깨비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농원 매점과 식당 건물, 매장내부 모습, 도깨비 숲, 축제위원회 사무소(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농장 관리 건물로 다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다 됐다. 불과 한 두 시간 전만 해도 한산했던 농원에 관광객이 제법 많이 찾아왔다. 가족 끼리 초원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연인 끼리 다정하게 거니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초원의 가족’이 됐다.

필자는 이 농장 주인을 만나고 싶었다. 때마침 학원농원 직영매장에서 수수한 차림의 진영호 대표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함께 간 강 선생님은 필자에게 “정말 운이 좋다”고 말했다. 진 대표님 뵙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더군다나 축제가 코 앞에 다가와 있는 시점이니 이래저래 바쁠 때다.

아주 부드러운 인상과 말씨로 필자를 맞이한 진 대표님은 이 농장이 탄생하고 지금까지 이어왔던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이 농장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던 1971년부터 1년여 직접 뛰어들어 뽕나무와 일반 농작물을 경작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패’와는 개념이 다르다고 했다. 당시 농업의 벽을 절감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금호에 입사해 이사(理事)로 근무하다 지난 1992년 퇴사한 후 다시 시작, 21년을 이어오고 있다. 

진영호 학원관광농원 대표가 청보리밭 농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청보리축제는 돈 안들이고 여는 축제로 유명하다. 봄축제 때 50만명이 찾는데 보통 50만명 모이는 축제의 비용이 10억원 든다고 한다. 주로 50만명 유치를 위해 연예인 초청이라든가 각종 흥행을 위해서 쓰는 돈이 그렇게 든다. 하지만 이 농원은 보리농사, 메밀농사를 잘 지으면 일단 관광객은 스스로 찾아온다. 성대한 축제를 위해 굳이 사람을 돈들여 모아올 필요가 없다는게 이 축제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복병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기상조건이다. 특히 가을 메밀꽃 축제의 경우 태풍의 시기가 겹쳐 가끔은 쑥대밭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 해 농사는 물론 경관축제도 망치게 된다.

1994년 관광농원으로 지정받고 2004년부터 봄에는 청보리밭 축제, 가을에는 메밀꽃 잔치를 열어오고 있는 이 축제는 우리나라 대표 경관농원으로 발돋움했다. 1년에 두 차례 축제에 약 80만명이 찾는다고 했다. 고창군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효자축제가 됐다.

함께 자리한 강 선생님이 다시 소나무 얘기를 꺼냈다. 죽은 나무 대신 새로 한 그루 심는게 어떻겠냐고. 대표님도 그럴 생각이라고 했다. 외로운 소나무 새 짝이 곧 생길 모양이다.

한가롭게 소풍을 즐기는 초원의 가족
나뭇가지 사이로 본 초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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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ㆍ메밀농업은? : 보리와 메밀 농업은 경제적으로 보면 수지가 안맞는 농사다. 돈을 벌려고 생각하면 더 생산적인 농작물을 선택해야 하지만 이곳 학원관광농원이 보리와 메밀을 고집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일을 축제로 시작해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 일종의 사명감이 첫번째고, 또 국가적으로 볼 때는 모두가 돈되는 작물만 재배할 경우 보리와 메밀 같은 농작물의 존립기반이 사라질 우려가 있어 일정 규모 이상 재배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이 작물을 심는다. 

초원의 여러 경치들.

이 보리와 메밀 같은 농작물을 ‘경관작물’이라 하고 이 지원금을 ‘경관보조 직불금’이라고 한다. 보리의 경우 1정보에 100만원(평당 333원), 메밀은 1정보에 170만원(평당 566원) 씩 보조받는다. 하지만 이곳의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을에 메밀 대신 무나 배추 등 김장용 작물을 심는다. 보조금 보다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많은 나라에서도 그렇듯이 정부에서도 작물의 대를 이어감과 동시에 아름다운 경치로 국민의 여가활동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하고 있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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