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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서 지구 한바퀴 - 이해준의 '희망가족' > 서부개척자 닮은 육중한 열차…客의 마음 드넓은 평원 내달리고…
<46> 美대륙 횡단 ① - 암트랙 타고 워싱턴에서 시카고로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 대신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全美철도망 암트랙으로 이동

워싱턴~시카고는 6개주 경유
운행시간만 18시간 소요

예기치 않게 머무른 시카고
운하와 마천루 숲이 일품



[시카고=이해준 문화부장] 미국은 배낭여행자의 무덤이다. 대륙이 엄청나게 크고, 볼거리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토 면적이 남한의 98배에 달하고 중국보다 넓으며,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에 비해서도 2배나 된다. 내륙지방의 경우 인구밀도도 낮아 대중교통망이 열악하다. 때문에 자동차 렌트가 일반적이며, 배낭여행의 바이블인 론리 플래닛도 그걸 권하고 있다. 남미에서 만난 미국 여행자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미국 여행방법을 물어보았지만, 한결같이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부터 유럽~남미까지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여행했던 것을 미국에서 바꾸기는 싫었다. 여행자의 오기 같은 것도 작용했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가족들에게 역경을 넘어서는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생각은 그러했지만, 미국 여행계획을 잡는 데는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남미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페루 리마에서 며칠 동안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뒤지며 여기에만 매달렸는데, 결론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시간이 충분하면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누비고 싶었지만, 결국 많은 곳을 포기해야 했다. 이래서 횡단열차를 타고 시카고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는 코스가 만들어졌다.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는 암트랙=대중교통을 이용해 미 대륙을 횡단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미철도망인 암트랙을 이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속버스인 그레이하운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여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건 역시 암트랙이다.

암트랙을 이용해 미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 노선은 4가지가 있다. 그중 중북부를 가로지르는 3개의 노선은 모두 시카고에서 출발한다. 첫째 노선은 시카고~시애틀을 잇는 노선으로, 캐나다 아래 북부지역을 통과한다. ‘엠파이어 빌더(Empire Builder)’, 즉 ‘제국 건설노선’이라고 부르며 소요시간은 46시간이다. 둘째는 시카고~샌프란시스코를 잇는 노선으로, 중부 로키산맥을 통과해 환상적인 경치를 자랑한다. ‘캘리포니아 제퍼(California Zephyr)’, 즉 ‘캘리포니아 미풍노선’이라고 부르며 산악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에 51시간이 걸린다. 셋째는 시카고~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노선으로, 중부지역 콜로라도 고원 및 그랜드캐니언 남쪽을 통과한다. ‘사우스웨스트 치프(Southwest Chief)’, 즉 ‘서남부 최고노선’이라고 부르며, 경유 도시가 많지 않아 40시간 걸린다.

 
암트랙이 지나가는 중소도시 역에 독특한 종교 복장을 한 신도 등 승객들이 육중한 대륙횡단 암트랙 열차에 오르고 있다.

이들 세 가지가 대륙을 횡단하는 대표 노선이다. 동부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시카고까지 걸리는 시간이 17~20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이동하는 데 최소 60시간에서 많게는 70시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네 번째 노선은 최남단 뉴올리언스~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노선으로, 멕시코 접경지역을 통과한다. ‘선셋 리미티드(Sunset Limited)’, 즉 ‘석양노선’이라 부르며 소요시간은 48시간이다. 뉴욕에서 뉴올리언스까지는 30시간, 시카고에서 뉴올리언스까지는 19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노선을 이용해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서부로 이동할 경우 70~80시간이 걸린다.

필자는 6개월 동안 거리에 관계없이 8구간의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429달러에 구입해 대륙을 횡단했다. 시카고~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캘리포니아 제퍼 노선을 이용했다.

그레이하운드는 한번 타면 그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지만, 암트랙은 현지인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첫 번째 횡단여정이었던 워싱턴~시카고 열차에선 미국인들과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시카고에서 그랜드캐니언 입구까지 30시간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18시간의 동북부 평원 질주=대륙횡단의 첫 번째 여정으로 워싱턴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동부시간 오후 4시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 9시(중부시간)에 도착, 18시간 가까이 걸렸다. 유럽기차에 비해 훨씬 육중한 모습이다. 아기자기한 멋은 없이 실용적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거친 황야를 헤치고 서부로 달리는 미국인들의 개척과 도전정신을 닮은 것 같다.

워싱턴 시내를 벗어나자 숲 속에 주택들이 듬성듬성 자리잡은 교외 주택가가 펼쳐졌다. 한참 달려도 주택가의 풍경이 달라지지 않고 비슷하다. 주택과 차고, 작은 정원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교외의 주택단지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열차에는 좌석이 듬성듬성 비었지만, 하나의 작은 세계다. 홀로 또는 가족 단위로 여행하는 사람,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 열심히 업무를 보는 비즈니스맨 등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열차에 오를 때 차장이 좌석표를 나누어 주었는데, 내 옆자리엔 승객이 없어 한적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더구나 오후에 출발하는 야간열차이다 보니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승객들이 많았다.

북서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자 평원과 산이 광활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육중한 기차는 울창한 숲과 광활한 평원이 교차하는 자연 속으로 신나게 달렸다. 3시간 가까이 달리자 해가 서서히 넘어가면서 평원과 숲을 노랗고 붉은 노을로 물들였다. 그야말로 달리는 열차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주차간산(走車看山)이었다. 몸은 기차 안에 있지만, 마음은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야간열차이지만 일반실엔 좌석만 있어 밤에는 의자에 기대거나 누워서 꼬부랑 잠을 자야 했다. 아무래도 불편해 밤새 뒤척거려야 했다. 그런데 에어컨을 세게 틀어 옷을 다 껴입어도 추웠다. 인도에서처럼 담요를 둘둘 말고 잠을 청하는 사람도 많았다.

새벽부터는 본격적인 중북부 평원이 펼쳐졌다. 여명이 터오는 가운데 드넓은 평원과 거대한 농장이 이어지고 간혹 주택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 울창한 숲이 한참 이어지길 반복했다. 미국이 광활한 국토의 축복받은 나라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500년 전만 해도 인디언이 말을 달리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유럽 이민자의 후예들이 사상 최고의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물류와 농업ㆍ공업의 중심지 시카고=시카고에선 당초 오래 머물 계획이 없었지만, 다음 암트랙 열차 티켓 사정 때문에 4일 동안 머물렀다. 5대호의 하나인 미시간호 옆에 자리한 시카고는 도심을 통과하는 운하와 거기에서 바라보는 마천루가 일품이었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심의 현대적 건물이 결코 아름답게 보일 수 없지만, 운하와 미시간호에서 바라본 시카고는 아름다웠다.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윌리스 타워의 ‘스카이 덱(Sky Deck)’ 전망대는 시카고와 중북부 평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석양이 질 때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시카고거래소는 이곳의 아이콘과 같은 곳이다. 주변에 증권거래소와 옵션거래소(CBOE)가 자리잡고 있고, 트레이더와 비즈니스맨들로 항상 붐빈다. 옥수수와 같은 곡물을 거래하는 것에서 출발해 이제는 원유, 금, 철광석과 같은 원자재는 물론 통화, 선물, 옵션까지 지상의 모든 것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곳이다.

하지만 시카고 역시 대도시답게 사람들이 모두 바빴다. 점심시간이 되자 시카고거래소 앞의 맥도널드와 중국음식점 얌얌 등 패스트푸드점은 비즈니스맨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패스트푸드로 때우다시피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뛰어갔다.

시카고에서 머물며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는 달콤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가족들과 함께 대륙을 횡단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으나, 혼자 여행하게 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러면서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가 생각났다. 가족 여행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하루 한걸음’으로 정했다. ‘태산을 오르거나 지구를 한바퀴 도는 것도 한걸음에서 시작하고, 꾸준히 발을 내디디면 못 갈 곳이 없지만, 내딛지 않으면 아무 곳도 갈 수 없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 결국 이곳까지 온 것 아닌가. 끝까지 여행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청소년기의 아이들도 이 말의 의미를 깨닫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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